시댁
저번 추석 연휴 날이었다.
그날도 명절 음식 준비로 큰댁에 가서 어머니와 음식을 하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1년에 이틀, 추석과 설날에 하룻밤 자고 온다. 이 날 외에는 시댁에서 자고 올 일은 없다.
기름 냄새로 온몸이 쩌들었고, 남편과 어머니를 꼬셔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집 앞 카페로 향했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명절 음식을 하고 나면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아메리카노가 당긴다.
이번 추석은 아버님은 나와 어머니가 요리하는 사이 다른 곳에 인사를 드리느라 바쁘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카페 밖에서부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어 저기 아버님 같은데요?'라고 말하며, 카페에서 나가 아버님을 불렀다.
아버님이 들어오시는데 양손 한가득 장을 봐오셨다. 그 장바구니를 보자마자 어머님은 무엇을 또 이렇게 샀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셨다. 인사를 드리며 드신 술기운이 남아있는 아버님은 '우리 며느리 온다니깐 샀지~ 맛있는 저녁 먹어야지~'하며 짐을 보여주셨는데, 그 안에는 한우고기와 슈퍼에서나 팔법 한 싸구려 와인이 들어있었다.
그 날은 그렇게 갑자기 한우파티가 열렸다. 시댁 거실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고 그릴을 꺼내와서 한우를 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소주를 안 먹는 날 위해서 '며느리는 와인 먹어~~'라며 와인을 꺼내 주셨다.
비록 어디 정통 있고 유명한 맛이 훌륭한 와인은 아니었지만, 너무 달콤했다.
평소에 수다스럽지 않고 진중하신 아버님은 술기운인지 애정표현이 시작되었다.
'며느라~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 '아니 1년에 이틀만 자고 가는데 좋은 거 먹여야지~' 고기를 계속 구워주시며 말씀이 많아지셨다. 1년 가까이 이렇게 나에게 말을 많이 하신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다스러운 아버님이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는지 어머님은 옆에서 말리기 바빴다. 하지만 그날따라 '평소에 표현을 내가 부끄러워서 못하는데! 이럴 때라도 마음을 알지!' 라며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의 이야기만 듣고, 나에게 딱히 말씀도 별로 없으신 시부모님을 보면서 참 무심하다고 생각도 해봤다. 1년이 넘어도 아직도 시부모님은 오라고 부르시거나, 우리 집에 가겠다며 먼저 말하는 적이 없었다.
가끔은 이런 면이 섭섭할 때도 있었다. 내 생일날 외에는 나에게 전화 거는 일도 없었다. 이런 시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애정표현을 하다니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참 멀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멀고, 가깝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가까운 시댁. 나도 어릴 적에는 결혼하면 시부모님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걸 공유하고 애교도 잘 부리고 살뜰히 챙기는 며느리가 되어야지! 했지만, 이것은 정말로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러기에 이런 며느리와 시부모님이 TV에 나오는 것이다.
아직 나는 먼 곳과 가까운 그 어딘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지만 중간 언저리에 있는 것 같다.
그동안 1년 동안 시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의 부모의 사랑은 참 다양하다고 느낀다.
우리 집안은 부모님과 워낙에 대화와 스킨십으로도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였고, (난 아빠와 여전히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게 익숙하다) 미주알고주알 서로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자식의 일을 다 알고 싶어 한다.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고 그래서 우리 엄마는 잔소리를 참 많이 하신다. 이것 때문에 짜증내고 싸운 일은 말할 수 없이 많다.
시댁은 부모님이 전적으로 자식을 믿고 따르신다. 남편은 살면서 잔소리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부해라', '대학 가라', '결혼해라' 이 3대 잔소리도 들은 적 없단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은 아니셨다. 1년이 지나니 어머님 아버님의 사랑은 잘되라고만 하시고 그저 믿고 바라보신다. '너희들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아버님이 참 많이 하신다. 우리 부모님처럼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툴고 익숙하지 않을 뿐 시부모님의 사랑도 똑같았다.
아직도 난 시부모님에게 안부 전화할 때가 되면, 아.. 시간이 늦었나? 내일 할까? 이러며 하루하루 미루게 되고, 남편도 친정에 연락하게 되면 여전히 긴장된다고 한다. 특히나 카톡을 보낼 때면 엄청 신중하게 문장을 만든다.
아마도 이게 편해지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서로의 이 거리를 받아들여야겠다.
여러분들의 시댁과 친정과의 거리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