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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amI Nov 05. 2019

10. 회사만 모르는 계획 임신

예비부부

결혼 전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2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을 하고서 둘 중에 한 명이 딩크를 선언하여 한 명은 애기가 너무 갖고 싶은데 한 명은 반대한다거나, 애매하게 낳을까 말까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게 싫었다. 나와 남편의 주위 사람들도 보고, 딩크로 사는 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결혼하면 아기를 낳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 우선 1명을 낳아보고 둘째를 낳을지는 결정하자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의 결정권은 남편이 전적으로 나에게 주었다. 아무래도 임신하고 육아하는 건 엄마가 더 힘드니 나에게 넘겼고, 원치 않으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랑 남편 모두 애기를 딱히 좋아하는 분류는 아니다.

특히나 나는 내가 알고 지내는 아기들은 이쁘고, 여전히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고 떼쓰는 애기를 보면 짜증부터 난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이상하게 본능인 건가? 내 남편을 닮은 애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기가 생기면 우리의 자유는 없어지고 희생을 해야 하지만 우리의 2세를 갖기로 결정했다.


단, 우리는 우선 1년은 신혼을 즐겁게 즐기고 그 후에 갖기로 결정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던 나에게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재밌고 달콤하다. 퇴근하고 들어와서 내가 만든 저녁밥을 맛있게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도 즐겁고, 남편이 만들어준 서툰 음식을 먹으며 맥주 한잔 기울이는 것도 즐겁다. 쓰레기 버리고 손잡고 동네 산책을 즐기고, 주말이면 눈뜨자마자 춘천 갈까? 해서 바로 춘천 가는 이런 여행도 뜻밖의 기쁨이다. 이제는 눈치 안 보고 해외여행 뻔질나게 돌아다녀도 돼서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여행도 남들보다 길게 다녀왔지만, 미국에 일본 해외여행은 물론이며 각종 국내를 돌아다니며 놀기 바빴다. 이렇게 둘이 행복하게 사는 우리를 보며 어른들은 걱정이 시작되었다.

드문드문 우리에게 '둘이 나이도 있는데~ 애기도 하나쯤 있어야지?' 라며 은근히 말씀을 하셨다.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 피임하면 애기 잘 안 생긴다~ 피임은 하지 말아'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귀를 닫고 우리만의 계획대로 지냈다. 우리는 정말로 정확히 1년 결혼기념일까지 피임을 철저히 하였고, 그 뒤로는 언제든 애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피임 없이 부부관계를 하였다.

처음에는 정말로 피임 안 하면 바로 생기느 건가? 걱정도 되었다. 365일 가임기라던데... 진짜 이래도 되나? 싶었다. 참 지금 생각하면 30대의 이 나이에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나 자신이 너무 웃기다.


이런 나의 2세 계획(?)을 아는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나 내 주위에는 둘 다 건강해도 애기가 6개월~1년 후에 애기가 생긴 친구들이 꽤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앉혀두고 많은 조언이 시작되었다.


'우리야 어릴 때 결혼해서 애기가 1년 동안 안 생겨도 뭐 그러려니~ 하고 지냈지만, 넌 지금부터 1년 뒤에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렇게 안일하게 있으면 안 된다. 애기가 그런다고 그냥 생기는 줄 알아?

배란일에 맞춰서 관계를 한다고 해도 애기는 잘 안 생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배란일에 맞춰서 부부관계를 해보고 몇 달해도 안 생기면 병원 가서 검진도 받아보고 해봐야 해 '라며 많은 이야기가 들렸다.


순간 내가 너무 안일했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도 바로 생길 거란 생각은 없었지만 한 3 달이면 생기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병원  검사도 안 해본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나 싶었다.


그 후로 남편과 친구의 조언(?) 대로 우리 이제 언제든 애가 생겨도 되니 배란일에 맞춰서 해보고 그래도 계속 안 생기면 병원을 가자!라고 결정하였다.


그런데 음.. 이게 웬걸, 처음으로 나의 생리주기 어플상에 나타나는 배란일에 열심히(?) 사랑을 나눈 결과 단순히 생리 전 증후군이 왜 이렇게 심하지?라고 생각하며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하려다 아차! 싶었다. 급하게 테스트기를 사서 테스트해보니 너무나도 선명하게 두 줄이 나왔다.

그때의 당혹감이란... 뭔가 드라마에서 보던 두줄을 보자마자 눈물이 흐르고 기쁨의 환호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이제 아무 때나 애기가 생겨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이 앞섰다.

다음 달에 올해 마지막 여행으로 끊어 둔 비행기표가 생각났다.


남편이 올 때까지 멀뚱히 앉아 있다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이야!' 라며 보여줬다.

남편도 당황해서 이게 뭐야? 라며 한참을 쳐다보더니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둘이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우리가 애타게 애기를 기다린 것도 아니고 애기를 너무 이뻐해서 좋아 죽는 사람도 아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남이 었던 (어쩌면 아직도 남인) 우리 둘이 만나서 우리 둘이서 애기를 만들었다는 게, 이제 우리의 2세가 생겼다는 게 너무 이상하면서도 뭔가 울컥했다.


그 날의 기념으로 소고기 집에 가서 한우로 저녁을 먹었다. 앞, 뒤 살짝 구워서 덜 익은 소고기를 먹는 걸 즐기는 내가 순간 '어라.. 이 피 흐르는 고기 먹어도 되나?' 했을 때 내가 진짜로 임신을 하긴 했구나 싶었다.


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한 건 생각보다 빠른 시기인 거 같아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지금 병원 가봤자 알 수 있는 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꾸욱 1주일 넘게 기다렸다.

그때까지 회사에서도 아무 말 않고 있었다. 매일 커피를 내려마시고 점심시간에도 한 잔씩 먹던 나였는데, 커피를 먹자고 할 때마다 딴 거를 먹거나 요새 잠을 못 자서~라고 둘러대며 버티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말에 찾아가 아기집과 난황 초음파로 확인하고 나서 주위 모두에게 알렸다. 모두들 축하해주고 심지어 딩크로 살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다.


막상 회사에 말하려니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확인증을 끊어주며 이거 하루빨리 제출하고 단축근무 신청하라고 일렀다. 지금은 위험하니 하루라도 빨리 써야 한다며 당부하셨다.

임신확인서를 가방에서 언제 꺼내지.. 고민하다 오후에나 돼서야 말을 전했다. 그리고 왠지 죄짓는 거 같고 내가 눈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도 좀 당황스러워요'라는 말을 붙였다.


뭐 사실.. 생각보다 빨리 생겨서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언제든 임신할 수 있다 생각했으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치 임신생각이 전혀 없던 부부가 애기가 생긴 것처럼 말했다.


나의 걱정과 달리 축하해주셨고, 흔쾌히 단축근무를 신청하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야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세상은 이미 생각보다 더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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