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남편, 시댁 흉보던 엄마들은 왜 결혼을 추천할까
연말은 연말이다.
서로 바쁘게 살고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횟수가 적어지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약속을 잡아서 만나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우리의 모임의 최고 화제는 단연 '결혼'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과연 이 남자랑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결혼을 하면 스몰웨딩을 할 거야! 라던가 과연 결혼은 정말 행복할까? 이런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나이에 이제 이런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제는 '결혼 후 vs 결혼 전'으로 나뉜다. 나와 같이 유부녀인 친구들은 소소한 결혼생활 이야기와 2세 계획, 이미 애기가 있는 친구는 애기 이야기와 시댁 이야기로 정신이 없다.
아직 결혼을 안 한 미혼인 친구들은 현재 연애 이야기나, 연애는 하고 있지 않지만 어떻게 혼자 멋지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하기 바쁘다.
이제 이 나이에는 연애를 안 한다고 초조해한다거나,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랑 결혼을 안 하면 난 평생 결혼 못할 거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을 보이는 대화는 끝이 났다. 현실이 더 앞선다.
이런 이야기들 중 결혼을 했어도, 안 했어도 모두 한 가지 공통된 화제가 있었다. 바로 '엄마'이다.
엄마라는 이름만 떠올라도 눈물이 핑 돌기 도하지만, 어느 시절엔 엄마라는 이름만 떠올라도 빡 치는 순간이 있다. 아마 지금 30대에 결혼을 안 했거나 앞두거나 신혼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
이번 송년회에서 가장 큰 대화거리는 "왜 엄마들은 딸들에게 남편 흉, 시댁 흉 그리고 시집살이를 딸들에게 보여줬으면서 결혼을 꼭 하라고 하는 걸까?"였다.
참 나도 많이 궁금했다.
결혼 전까지 생각해보면 내가 10대 시절 우리 부모님은 참 많이도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부부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어린 시절엔 나는 두 분이서 이혼하면 난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 잠 못 자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커서는 아빠 없을 때 아빠 흉도 보고 집안 경조사가 지나가면 시댁 흉을 참 많이도 봤다. 이거 또한 내가 결혼해보니 전업주부의 삶을 살면서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고, 집안 흉이란 게 내 얼굴에 내침 뱉기 아닌가 그래서 차라리 자식한테 넋두리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결혼에 대해서 무한 긍정, 동화나 드라마 같이 인생의 최고의 해피엔딩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이런 경험에 대해 나뿐이 아니라 내 친구들 모두 공감한다. 어떤 친구들은 시집살이당하는 엄마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많은 시간을 딸들에게 남편, 시댁 흉을 보고 딸 앞에서 시집살이를 보여주면서 왜 결혼을 하라고 닥달할까? 마치 결혼이 이 세상의 행복이 끝이고 인생의 끝인 것처럼 결혼을 하라고 딸들을 내몰아 낸다. 특히나 30대가 되면 이 정도가 더더욱 심해진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요새 내 친구들의 넋두리 또한 평소에 결혼에 대한 말을 전혀 하지 않다가 갑자기 요 몇 년 새에 당장 결혼하라고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걸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단순히 잔소리 수준이 아니다 마치 결혼을 안 해서 회사에서 한자리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스스로 번 돈으로 생활을 해나가며 적당한 취미와 적당한 운동 그리고 대인관계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딸들을 마치 하자가 있는 사람을 취급한다.
행여나 남자 친구가 있거나, 소개팅, 선을 봤다고 하는 그 순간 한 두 번 만나면 결혼을 할 건지 안 할 건지 정해야 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나도 결혼 전에 이 루틴에 참으로 시달렸다. 연애라는 게 만나다가도 헤어지는 일이 허다하고, 소개팅이란 게 성사되는 것보다 파투 나는 게 더 쉬운 거 아닌가? 데이트 한 두 번에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참... 난감하다.
한 창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내가 주말에 데이트 나갈 때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되었다.
"어디가? 데이트?"
"응 데이트하러 가지"
"그 남자 친구랑 결혼할 거야?"
"모르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정하는 거지"
"결혼 안 할 거면 왜 만나? 뭘 더 알아봐? 헤어져"
정말로 출구 없는 대화이다.
이 대화를 매주 했다. 매주!
그래서 하루는 참다 참다 한마디 던졌다.
"엄마도 매번 아빠 몇 번 안 만나고 결혼해서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결혼 안 했을 거라며!! 나도 그런 결혼해서 평생 후회 사며 살까 봐 그런다!! 왜???"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난감해하셨고, 난 속이 시원했다.
도대체 혼자 열심히 사회생활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딸에게 남자를 만나도 자신만의 관점과 미래를 위해 신중한 딸에게 30대에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적인 취급을 할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이런 고통에 한참 고통을 겪는 미혼인 친구들이 유부녀들에게 "결혼하면 좀 안 이러겠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응 결혼하라 뭐 이런 잔소리는 없어지지 그런데 결혼 준비하는 순간 너가 결혼해서 서운하다~~ 라는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그렇게 결혼하라고 등 떠밀다가도 결혼하면 빨리한다고 섭섭해하신다), 결혼하면 아기 낳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셔"라고 답해주었다.
"아! 피임을 하지 말라는 잔소리까지 들어야 해!"
희망을 바란 친구들의 얼굴은 정색이 가득했다.
아.. 도대체 엄마들은 왜 그럴까..........
왜 우리나라 엄만들은 자식을 성인으로 독립된 개체로 안 볼까?
도대체 자식이 몇 살이 될 때까지 인생을 컨트롤 하고 싶어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