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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amI Apr 29. 2020

15. 가장 좋을 때!

인생 산부인과 선생님

어느새 임신 8개월 차.

27주까지도 티 안 나던 배도 이제 한 주가 다르게 나오고, 출산의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병원을 가도 한동안은 크 이슈 없이 검진만 받는다.

그동안은 다운증후군 검사, 당 수치 검사, 기형가 검사 등등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검사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애기가 잘 있는지 체크만 하는 수준이다.


태동도 활발해서 태동 만으로도 애기의 여부를 내가 느낄 수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 번 병원 진료도 늘 그러하듯, 토요일에 눈뜨자마자 향했다. 아직도 출근을 해야 해서 늘 토요일에

방문하고, 토요일은 예약이 안돼서 눈뜨면 바로 간다.


남편과 갔더니 코로나 때문인지 한산한 분위기에 대기도 별로 없었다.

이제 꽤 친근한 담당 간호사 분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간단히 초음파를 봤다.

이제는 초음파도 전처럼 호들갑스럽게 신기해하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음~ 잘 있군 건강히 잘 있구나~' 이 정도로 체크한다.


초음파를 보고 항상 선생님과 잠깐 면담을 갖는데, 나의 담당 선생님은 그 야말로 '쿨 가이' 이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추천으로 고민 없이 담당 선생님을 정했는데, 탁원한 선택이었다.


나도 한 '쿨'한 성격이지만 초산이고 모든 게 처음인지라 나도 이것저것 불안한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불안해서 괜히 인터넷 검색하고, 맘 카페를 검색하고 거기서 수많은 정보를 얻고 다 맹신하게 된다.


그래도 의문이 가는 건 검진 날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늘 담당 선생님은 ' 괜찮다~ ', ' 임신 이래서 그런 거지 이상은 없다~' 이런 반응으로 날 안심시켜주신다.


임신 18주? 19주? 쯤이었나? 남편과 나는 부산으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평소라면 고민 없이 자동차를 몰고 갔을 텐데, 걱정이 되었다.


아니 임신하면 뛰는 것도 조심하라던데... 차를 타도 되는 건가? 가면 5시간은 차를 타야 하는데 느껴지는 진동이 안 좋을까? 괜찮을까? 별별 생각이 들었다. ktx 표를 끊어야 하나 고민하다 담당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 저희가 부산에 놀러 가려하는데 차 몰고 가도 될까요?" 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왜? 뭐가 문제지? 뭐 그거 몇 시간 간다고? 휴게실 들릴 거 아닌가? 뭐 그런 걸 걱정해~" 하며 오히려 질문한 우리가 무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남편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신다.

"옆에서 잘해줘라~", " 옆에서 많이 도와줘라~" 등등 꼭 잊지 않으신다. 하루는 안 그래도 제가 술 못 마셔서 같이 안 마신다니깐 " 에이~ 술은 좀 먹을 수 있지~" 라며 남편 편을 들기까지 하신다.


언제나 유쾌해서 중요한 검사 전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가도 진료를 받으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런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건 가장 최근 진료 날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더 이상 큰 검사가 없어서 그저 의례적인 검사였고 5분 만에 끝났다. 그날은 우리 둘을 앉혀두고서는 정말 중요한 말을 하셨다.


"지금이 둘 사이가 가장 좋을 때다! 이제 애기 태어나면 10년 정도는, 둘째 낳으면 15년은 둘이 손잡고 어디 나갈 시간이 없다. 유모차라도 끌고 가야 하고 손을 하나씩 더 잡아야 하니깐 지금 날씨도 좋은데 돌아다녀! 응? 알았지? 코로나라 위험하다고 하는데 마스크 쓰고 조심히 잘 돌아다녀 지금 아니면 이제 10년 후 에나 가능하다고~"


그 말을 듣고 나오는데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온, 진정한 어른의 조언처럼 와 닿았다.

안 그래도 날씨 좋아지고 꽃이 펴서 마스크 쓰고 동네 근처를 조금씩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렇게라도 더 돌아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날은 병원 진료 이후 별 다른 계획이 없었던 우리 부부인데, 집안일은 끝내고 동네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방문했다. 가서 오랜만에 커피를 여유롭게 마셨다.


연애 때처럼 바로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며 앞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걱정 반 설렘 반이 섞인 대화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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