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사슴탐사
여행을 미리 계획하는 타입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즉흥적이라 분류되는 대문자 P인 탓에 미리 무언가 계획되어 있으면 지키지 못할까 봐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꼭 지켜야 하고 미리 계획한 일은 중요도를 떠나 내 미래 일정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버린다. 또, 미리 한 약속에 대해 “미안, 그 일정은 못 지키겠어”라는 말하게 되는 상황도 싫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6개월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2월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에 가기로 결심한 뒤부터 나의 많은 일들은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기약되었다. 뭐 할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슬란드 다녀와서 생각해 볼게 대답하는 식으로. 그래서 나는 7월에 여행을 계획한 뒤 더운 여름을 지나는 동안 수영을 하면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작업실에 있으면서도 꽤 자주 아이슬란드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정말 출발하게 되었을 때는 얼떨떨했다. 정말로 간다고? 진짜?
당장 다음 주에?(나에겐 그간 6개월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열두 개들이 초콜릿 상자를 선물 받았을 때,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먹겠다고 미뤄둔 채로 다른 초콜릿을 맛보면서 이것도 이렇게 맛있는데 가장 맛있는 그건 어떨까 기대하고 상상하던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 정말 그 한 조각을 집어들 때가 온 것이다.
처음에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체력을 만들어야 하고 완벽하게 짐을 싸야 하고 컨디션을 완벽하게 끌어올려서 가야 한다고. 그렇게 단단히 벼르며 1월의 몇 주를 보내고 나니 나는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게 짐을 쌓아두던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안에 무언가가 푸시시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여행이 완벽한 여행이 될지 아닌지는 실제로 가 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는 완벽의 형태 또한 불완전하기 않은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조금 부족하고 조금 아쉽더라도 내 마음만은 그걸 제대로 흡수할 수 있게끔, 그 정도의 깨끗한 마음 하나만 준비해 가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후로는 생각날 때마다 한쪽 벽에 쌓아둔 물건들을 덜어내는 연습을 했다. 내복도 이렇게나 많이는 필요 없을 것이고 겉옷도 마찬가지. 방한모자, 목도리, 장갑은 일단 하나씩만 챙기자. 삿포로에 갔을 때 생각만큼 춥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너무 많이 챙겨가는 것도 과유불급일 것이다. 하나가 꼭 필요한 물건은 일단 하나를 챙기고 두 개째부터는 숙고하자. 그러면서 짐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24인치 캐리어 안에 10일 치 여행의 짐이 다 들어갔다. 마지막엔 조그만 기내용 캐리어를 추가로 더 챙겼다. 사실 이건 챙기지 않아도 괜찮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긴 것으로, 내 조급한 마음을 담을 용도였다. 불안함을 위한 여백. 불안을 위해 이 정도 귀찮음만은 감당해 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수런거리던 마음은 막상 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 바람과 함께 훌훌 날아가버렸다. 일단 비행기는 떴으니 돌이킬 수 없다. 내게 믿을 건 여행자보험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비행기를 탄 기간까지 포함해서 총 11일간의 여행이었다. 코로나 이후에는 오랜만에 밟은 유럽 대륙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렇게 사방이 조용하고 자연뿐인 여행은 오래간만이었다. 낯선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여행지가 주는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했다. 나와 친구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멈춰서 사진을 찍었고, 고개를 돌아봐도 온통 설산이 보이는 경이로움에 눈을 크게 떴다가도 계속 이어지는 길에 노곤해져 눈을 붙이기도 했다.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부터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에 소흘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또 새롭게 보이는 설산과 하늘의 풍경에 뒤늦게 탄성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오로라 스폿을 찾아 숙소를 매일같이 옮겨 다녔는데, 각각의 숙소가 모두 다른 느낌인 점도 새로웠다. 그중 어떤 곳은 협소하지만 오로라를 보기에 좋은 곳 같았고 어떤 곳은 집 자체가 좋아 며칠 더 머무르고 싶었다. 어느 마을은 참 소담하고 단정해서 언젠가 이 집에 한 2주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품었다.
아이슬란드에 오면, 아이슬란드가 보여주는 것만 보고 가라는 문구가 안내책자 어딘가에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보려고 욕심부린 것은 아니었음에도, 아이슬란드는 내게 많은 풍경을 넘치게 보여주었다. 오로라도, 설산도, 피오르드 협곡도, 시원하게 내리 꽂히는 폭포도, 게이시르 간헐천에서 솟아오르던 물줄기도, 서늘하던 얼음동굴도 모두 기억에 남았지만 아직도 종종 생각나는 것은 그곳을 걸어가던 나의 그림자다.
주변에 커다란 건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해가 낮게 떴다가 이내 지기 때문이었는지, 그곳에선 나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었다. 저무는 시간에 한강변을 걸어갈 때만 볼 수 있던 그림자를 여행 내내 마주했었다. 나는 기다란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곳에서는 원없이 볼 수 있었다. 하얀 언덕을 올라가다가도 고개를 돌아보면 내 키의 스무 배 정도는 되는 그림자가 길게 누워 나와 동행하고 있었다. 이런 그림자는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내 것인데도 내 것인 아닌 듯한 이상한 슬픔을 자아냈다.
나는 기다란 다리를 보며 내 짧은 다리를 더 크게 뻗었고 그러면 거인은 더 큰 다리를 길게 뻗었다. 나는 거인과 함께 눈길을 달리기도 했다. 내가 가는 만큼만 함께 동행해주던 나의 커다란 그림자. 나보다 절대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그 안정감이 좋았다. 한쪽 편에 낮게 뜬 해를 두고 다른 한쪽 편에는 거인을 데리고 걸어가는 길. 그래서 일행보다 몇 걸음 앞서 걷기도 늦게 걷기도 하면서 나와의 동행을 즐겼다.
조금 모자란 듯 챙겨갔던 짐가방은 11일을 여행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내게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누어 쓰다보니 오히려 넘칠 지경이었다. 나는24인치 캐리어 하나만 들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짐에도 나를 위한 여백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불안을 위한 보험으로 챙겼던 작은 캐리어도 나중에는 다른 이를 위해 쓸모가 있었던 것처럼.
쓰고 보니 봄이다. 벌써 개나리가 많이 피었고 목련도 하얀 솜털이 돋아나 잎이 피어날 참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겨울 나라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제법 두텁게 겨울의 야이기를 쟁여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1월의 삿포로 여행과 2월의 아이슬란드 여행 이후로 겨울 여행은 당분간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삶은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늘 알 수 없는 거니까.
이렇게 눈쌓인 풍경과 동행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였다가 떨어져 걸어갔던 기억, 추운 곳에서 떨다가 들어와서 동그랗게 모여 따뜻한 것들을 나누어 먹었던 기억은 겨울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와 숨이 넘어갈 듯 웃었던 기억도. 이런 풍경들이 확실히 겨울 나라의 따뜻한 점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겨울 여행은 이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 다시 시작될 테고 그러려면 아직 멀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