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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15. 2023

중간에 끼어서 중간관리자입니다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1

곰과장은 중간관리자입니다. 중간관리자란 말 그대로 중간에 끼어 있는 관리자입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지시를 받아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직원들이 일한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위에 보고합니다. 한 부서를 관리하면서 업무 성과를 내는 것이 중간관리자로서 곰과장의 일입니다.      


‘중간’관리자란 본질적으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위에서는 일을 시키면서 부서의 상황까지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부서의 상황과 개별 규정에 맞추어 어떻게든 소화해내는 것이 중간관리자의 일입니다. 하지만 소화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지시가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지시에 대해 이견을 내거나,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양손을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곰과장은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곰과장은 자꾸 일을 안 하려고 하네?”     


그럴 때마다 곰과장은 참 억울한 기분이 듭니다.      


한편, 중간‘관리자’란 본질적으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면 중간관리자는 일을 시키는 존재이고, 세상에 일을 시키는 상사를 좋아하는 사람 따위는 없습니다. 물론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상사도 간혹 있긴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과장이란 일하라고 닦달하는 사람이고, 심지어 원래 없던 일을 새로 만들어내어 시키는 경우조차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 곰과장은 이런 뒷담화를 듣곤 합니다.      


“곰과장님(놈)은 일에 미쳤나 봐.”     


그럴 때마다 곰과장은 참 억울한 기분이 듭니다.         



            

대체로 중간에 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양쪽에게서 모두 욕을 먹는 게 일반적이죠. 중간관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경원시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부서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으며, 권한도 있다고 여깁니다. 곰과장도 직원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오자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꽤나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위가 그 사람에게 부여하는 권위 따윈 사라진 지 오래고, 나이 탓인지 사람들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가며, 알량한 권한이라는 건 무척이나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들에게 휘둘리기 일쑤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위에서는 일을 시키는데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독촉하고, 아래에서는 왜 또 일을 벌이느냐고 짜증을 내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곰과장은 어떻게든 양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행복한 결말 따윈 없습니다. 서로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곰과장은 대체로 슬프고 울적합니다. 




사실 대안이 있기는 합니다. 양쪽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면, 어느 한쪽만이라도 만족시키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위에서 떨어지는 일을 죄다 시키는 데로 이행합니다. 물론 직원들에게 폭발적인 욕을 먹고, 그런 부서장이 있는 부서는 모든 직원들의 기피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적어도 윗사람에게 인정받을 수는 있겠지요. 아마 승진도 빠를 겁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직원을 갈아서 자기가 승진한다'라고 표현하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부서를 제발로 찾아오는 직원도 간혹 있습니다. 이른바 야심이 있는 사람들,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지요. 


정반대의 방식도 있습니다. 위에서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못 들은 척 하는 거죠. 물론 아무나 할 수는 일은 아닙니다. 고용이 안정적인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특히 은퇴를 눈앞에 둔 사람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경우 부서장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자 복지부동의 화신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직원들은 엄청 좋아하지요. 일을 안 시키니까요. 물론 이런 부서에서 승진한다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만,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둘 다 매우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부서장들이 위에서 쪼이고 아래에서 들이받히면서 괴로워하는 게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곰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곰과장은 오늘도 연달아 한숨을 내쉬면서 퇴근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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