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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16. 2023

잘 하는 직원, 열심히 하는 직원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2

곰과장은 두 가지 기준으로 직원을 판단합니다. 첫째. 일을 잘하는가? 둘째. 일을 열심히 하는가?     


직장이란 일하는 곳이고 우리는 모두 일로 만난 사이입니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평가와 판단 또한 일이 기준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일하는 능력 말고도 여러 가지 중요한 미덕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직장에서는, 게다가 자신이 중간관리자라면, 일 잘하는 직원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일만 잘하면 기타 사소한 문제들은 대부분 용납이 됩니다. 일을 못하는데 인간관계도 별로인 직원은 모두가 기피하지만, 인간관계가 별로더라도 일을 잘 하는 직원이라면 서로 데려가려 줄을 섭니다.   

              

그렇기에 어떤 직원들이, 특히 신규 직원들이 종종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이든 뭐든 간에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말이지요. 일단 말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자기 할 일만 잘하면 터치받지 않습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가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만큼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잘하는 직원이 무척 드물죠. 


사람이란 으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곤 합니다. 누구든 간에 자신이 남들과 엇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백 명을 줄세우면 누군가는 1번이고 누군가는 100번일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2등이 있으면 99등이 있고, 3등이 있으면 98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면 적어도 한자릿수 번호표는 뽑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듯 일 잘하는 직원이 드물기 때문에, 일 열심히 하는 직원 또한 소중합니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일을 잘한다는 것과 전혀 층위가 다른 개념입니다. 일을 잘하는지의 여부는 대개 결과를 통해 판단합니다. 반면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과정에 해당하지요.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과정이 나빠도 결과가 좋을 수는 있지요.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우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서장은 일 잘하는 직원을 원합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반드시 결과가 좋지는 않더라도 ‘결과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는 것을요.      


공무원의 삶은 깁니다. 최근 들어 중도 퇴직하는 공무원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20년 이상에서 길게는 40년까지 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경험은 점점 더 쌓여갑니다. 한 부서에서도 오래 근무하면 3,4년을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못하더라도 경험이 쌓이면 일을 잘하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더욱더 높아집니다.     


언젠가 신규 직원이 제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부서장으로서 어떤 신규 직원을 원하느냐고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꼰대같이 들리겠지만 열심히 하는 직원을 원한다고요. 그리고 설명을 조금 더 덧붙였습니다. 신규 직원이 오자마자 일을 잘 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그렇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요.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할 거라고는 기대할 수 있고,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직원이라면 아무래도 좀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근본적인 의문 하나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잘 한다는 게 뭘까?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게 뭘까? 


물론 그 평가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제게 있어서 일을 잘 한다는 건, 신뢰하고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이 올리는 문서라면 결재자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살피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중간관리자의 입장에서 함께 일한 직원들 중, 단순히 중간 수준 이상이라는 칭찬을 넘어서 ‘정말로’ 일을 잘 한다고 느낀 사람은 지금까지 세 명 있었습니다. 그 직원들에게는 업무를 일임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었지요.    

  

제게 있어서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공부한 티가 난다는 뜻입니다. 작성한 자료의 행간에서 묻어나는 고민의 흔적과 관련 규정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 그리고 해당 업무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보고를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하나를 가르쳐 주었을 때 그에서 이어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찾아보는지도 살펴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야근을 많이 하는 정도 따위를 성실함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자. 모든 걸 떠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공무원 실무자라면 한 번 기억을 돌이켜 봅시다. 다른 부서에서 우리 부서로 오라는 제의를 자주 받았나요? 혹은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뜬금없이 주요 부서로 발령이 나 버렸나요? 그랬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일을 잘 하거나 또는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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