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3
지난 글에 이어서, 그러면 일 잘하는 직원만 데려오면 만사 오케이일까 싶지만 또 그렇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예컨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A라고 지칭하기로 하지요.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짜로 일을 잘합니다. 그래서 항상 일이 몰립니다. 조직이란, 특히나 공무원 조직이란 으레 그렇습니다. 일을 잘하면 더 많은 일을 얹어주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보상은 매우 짜거나 혹은 아예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항상 남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가기 마련입니다. A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A가 하는 업무는 부서에서 가장 골치 아프고, 가장 복잡하며, 가장 답이 없는 업무입니다. 그 동안 아무도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부서장은 새로 온 A에게 이 일을 맡겼습니다. 그래서 A는 매일 극심한 위통에 시달리며 밤샘근무를 합니다.
한편 같은 사무실에 또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B라고 불러 볼까요. B 역시도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순수한 업무 능력은 좋지 못합니다. 오히려 좀 어설픈 편이지요. 하지만 B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친화력이 좋다는 점입니다. 어딜 가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쉽게 사귑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 처리 자체에는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공무원 조직은 안면행정이라고 했던가요. 어느 부서에나 친한 직원이 두셋은 있고, 그들에게 연락해서 부탁하면 어지간한 문제도 금방 해결됩니다. 그렇기에 B는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꾸준히 성과를 내 왔습니다.
A는 항상 업무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주관적으로 보든 객관적으로 보든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도 부서장은 일을 줄어줄 생각은 아예 없어 보입니다. 그저 자기를 챙겨주겠다는 말뿐이지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A생각에는 아무래도 자신을 달래기 위한 감언이설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저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더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이 너무나도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래서 짜증이 납니다. 솔직히 A가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빨리 시켜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A가 보기에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B는 무척 짜증나는 인간입니다. 툭하면 다른 부서에 있는 안면 있는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이나 수다를 떨기 일쑤입니다. 일 이야기를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만날 하는 이야기가 어디서 점심을 먹자느니, 저녁에는 어디서 만나자느니 하는 사적인 용무 뿐입니다. 게다가 전화를 하지 않을 때는 일하는 척 하면서 인터넷 쇼핑이나 하더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B는 자신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갑니다. 단지 자신보다 연차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게다가 십중팔구 그 사람의 승진도 자신보다 빠르겠지요. 그런 현실이 A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A는 B가 싫습니다.
한편 B에게 있어서도 같은 사무실의 A는 골칫거리입니다. B는 그 직원보다 몇 년이나 빠르게 입사했습니다. 게다가 지금 직급에 오른 연도도 더 빨랐고, 부서에서 근무도 더 오래 했습니다. 나이도 더 많습니다. 그러니 공무원 조직의 대체적인 분위기라면 당연히 B가 더 빠르게 승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최근 부서장의 눈치가 심상치 않은 겁니다. A가 무척 어렵고 골치 아픈 업무를 맡았다 보니 부서장이 은근히 그 직원을 편드는 것 같습니다. 그 직원이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만큼 연차를 뛰어넘어 A에게 근무성적 평정을 챙겨주겠다는 말을 은근슬쩍 흘렸다는 소문이 돕니다.
B는 내심 열받습니다. 물론 그 직원이 자신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된 업무를 한다는 건 B도 압니다. 하지만 그 업무는 사실 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생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면 B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A가 고생하는 거야 자신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주제에 그저 고생한다는 사실만으로 순서를 새치기하려 드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A가 자신보다 머리가 좋을지는 모르지만, B가 보기에 A는 본질적으로 헛고생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기에 B는 A에 대한 호평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B는 A가 싫습니다.
부서장으로서 곰과장은 목하 고민 중입니다. 왜냐면 A와 B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곰과장이 보기에 두 사람은 부서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직원입니다. 서로 성향도 다르고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어떻게든 결과를 가져옵니다. 온갖 복잡한 규정과 매뉴얼 사이에서 답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내는 A의 능력도, 부서 전체의 분위기를 원활하게 할 뿐만 아니라 타 부서와의 협업마저도 손쉽게 해내는 B의 능력도 매우 훌륭합니다. 두 사람 모두 부서에 필요한 인재입니다.
그러나 근무성적 평정은 직원의 순서를 매기는 작업입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위에 올라가야 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순서는 곧 승진과 직결됩니다. 순서에서 밀린 사람은 필시 큰 불만을 가지게 되겠지요.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첫 번째 자리에 올라갈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잖아도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은데, 결과가 나오면 누가 위든 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 싸움이 날 겁니다.
곰과장은 가끔씩 예전에 읽었던 삼국지 생각을 합니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은 사이가 무척 나빴던 위연과 양의라는 두 사람을 기용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켰지만 적어도 제갈량 생전에는 그 충돌이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제갈량의 사람 쓰는 능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제갈량이 아닌걸.' 곰과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쉽니다. 자기 깜냥은 자기가 잘 압니다. 사사건건 충돌하는 A와 B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십중팔구 조만간 크게 부딪힐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부서의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그리고 곰과장은 그걸 사전에 방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쉰 후, 마침내 곰과장은 마음을 굳힙니다. 둘 중 한 사람을 이번 인사발령 때 내보내야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걸로 고민이 끝난 건 아닙니다. 곰과장은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럼 대체 누구를 남기는 게 좋을까?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