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제주도 보름 여행 - 열네째 날
제주에서 서귀포로 옮겨오면서 당황스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서귀포가 따뜻한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제주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파리와 모기가 갑작스레 늘어난 것이다. 공천포 해변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가 파리 십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공중곡예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얼마나 경악했던지.
하지만 그런 위생적인 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 딸아이에게는 모기 알레르기가 있다. 모기에 한 번만 물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린 곳이 오백 원짜리 동전 두세 개 정도의 크기로 탱탱하게 부어오르며 때로는 고름까지 생긴다. 아내도 정도는 조금 덜할망정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장모님으로부터 아내를 거쳐 딸아이까지, 삼대가 모두 동일한 증상으로 고생 중이다. 유전자란 참으로 무섭다.
그래서 그토록 주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아이가 모기에 물려 버렸다.
아이는 오늘 아침부터 간지러움과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자주 겪는 일이다 보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여러 가지 약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레르기가 눈 녹듯 스르륵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제주도의 모기가 육지보다 독한지, 자고 일어나자 생전 처음 보는 수포가 동전 세 개 크기만큼이나 크게 생겨버렸다. 아이의 칭얼거림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걸 받아주는 아내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녹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다. 병원에 가자고.
꽤 큰 규모의 병원에 가니 진료 후에 물집을 터뜨리고 약을 발라주었다. 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아이는 까무러치다시피 울었다. 그러나 처방받은 약을 먹고 바른 덕분에 상처는 생각보다 빠르게 가라앉았다. 이후로도 한 번 생겼던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데는 거의 보름 가까운 시일이 필요했지만,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의 훌륭한 의료 체계에 다시 한번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제주를 떠나기 전날 밤에 드디어 천문대를 찾았다. 그간 계속해서 구름 투성이었던 하늘이 드디어 갠 까닭이다. 서귀포 천문과학문화관으로 가는 1115번 도로는 낮에는 정말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데 해가 진 후에는 몹시 으슥하고 겁나는 길이 된다. 그러나 오랜만에 망원경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니 무서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고라니를 때때로 피해 가며 마침내 천문대에 도착했다.
과거, 딸아이가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세 가족은 이곳을 방문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왔고, 아무 생각 없이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가 토성의 고리를 직접 관찰한 순간 이곳은 내가 제주도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장소가 되었다. 그날 내가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제주도의 날씨란 워낙 변화무쌍해서, 심지어 당일 저녁에조차 그날 천문 관측이 가능할지 아닐지를 확답할 수 없었다. 날이 맑아서 천문대를 방문했다가 그새 구름이 끼는 바람에 헛걸음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주변의 불빛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딸아이와 함께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목동자리 아크투러스와 처녀자리 스피카, 거문고자리 베가를 광학망원경을 통해 직접 보는 건 무척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실로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계절이 맞지 않았는지 아쉽게도 토성 관측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주도를 떠나기 전에 벼르고 벼르던 천문대에 들를 수 있어서 대만족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모기 알레르기 때문에 온종일 고생한 걸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침대에 눕히고 옷을 갈아입힌 후, 모녀가 쌔근쌔근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제 내일이면 배에다 차를 싣고 제주도를 떠난다. 보름이란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가 보려 했지만 가지 못한 곳이 많고, 글로 쓰려했지만 쓰지 못한 곳도 많다. 하지만 여행을 끝내는 감흥은 내일 다시 정리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글을 마쳐야겠다. 키보드 소리에 아이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