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또 만나

사진 한 장 짜리 제주도 보름 여행 - 열다섯째 날

by 글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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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부터 비바람이 거세질 것이라는 예보가 있더니 배 시간이 앞당겨졌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열 개쯤 되는 크고 작은 짐보따리를 죄다 차에 실었다. 트렁크뿐만 아니라 조수석까지 짐으로 그득하다. 숙소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서귀포를 떠났다. 제주까지 오는 데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바퀴 달린 창고로 변해버린 차를 늦지 않게 배에다 올려놓았다. 출항하기 삼십여 분 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완도까지 한 시간 이십 분의 운항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가족들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빗방울이 더욱 세차졌지만 다행히도 파도는 거칠지 않았다. 그러나 배는 생각보다 더 많이 흔들렸다. 쾌속선이라 그런 모양이다. 출발 전에 멀미약을 먹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의 출렁임에 따라 위장이 함께 전후좌우로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내가 보름 동안 쓴 글들을 대강 훑어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민망했다. 시간에 쫓기고 귀차니즘에 시달리며 대충대충 쓴 티가 역력하여 얼굴이 화끈거린다. 두서도 없고 균형도 없다. 쓰려고 했지만 깜빡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고 반대로 왜 썼는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대목도 있다.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완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 이제야 제주도를 떠났다는 실감이 든다. 보름 살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들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경험이었지만 세상은 원래 예측대로 되지 않기에 재미있는 법 아니겠는가.

지금은 완도의 작은 숙소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은 후 내일이면 공주에 들렀다가 모레면 마침내 서울로 돌아간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나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와는 천양지차인, 시끄럽고 요란하지만 동시에 푸근한 도시로. 우리의 집이 있는 곳으로.

아내는 여행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한다.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잘 살펴보니 아내가 그보다 더 좋아하는 때가 있다. 바로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그때 아내는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때로는 여행 자체보다 준비하는 과정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아내에게 있어 제주도는 특별한 곳이다. 결혼한 후 네 번이나 제주도를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결국 다섯 번째 여행으로 제주도 보름 살기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나면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할 정도다. 그건 아마도 절반 이상은 진담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여정을 마치면서 여섯 번째가 그리 멀지 않음을 예감한다. 아마도 이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으리라.

그렇기에 제주도를 떠나면서, 잘 있으란 인사보다는 이 쪽이 더 낫겠다.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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