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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pr 29. 2024

영안실 스테인리스는 매우 반짝거리고

아빠를 화장한 지 9주가 지났다.


아빠를 화장한 지 딱 9주째 되는 날이다. 도서관까지 이어진 공원은 구석구석 초여름 연두색으로 일렁였다. 


도서관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빠랑 닮은 어르신이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휙 지나갔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탯줄 끊은 지 40년이 넘었는데 연결되는 날이 있다. 엄마도 울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공원은 살아있는 소리가 가득했다. 세발자전거와 보도블록이 부딪히는 달달거림, 산책 나온 강아지끼리 짖는 왈왈거림 사이로 엄마는 오래 흐느꼈다. 



그 흐느낌이 초여름 볕을 갈라내는 바람에 나는 순식간에 다시 영안실 스테인리스 블록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영안실에서 수의 입히기 전 마지막 모습을 엄마에게 안 보여주길 잘했다 싶었다. 


아빠에게 수의를 입히기 전, 장례지도사가 나를 불렀다. 반짝이는 정사각형 스테인리스를 블록처럼 쌓아 올린 큰 방에서 관리자는 손잡이 하나를 쑥 잡아당겼다. 아빠가 방에서 입고 있던 옷과 침대 이불과, 물 마실 때 닦아주던 손수건이 그대로 드르륵 딸려 나왔다. 시신이 된 아빠를 그렇게 처음 봤다. 


보랏빛이 도는 아빠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온몸을 돌던 피가 멈추면서 그 자리에서 응고된 흔적이다. 손톱까진 피가 돌지 않았는지 여전히 분홍빛이었다. 그 손톱을 하나하나 쓸어보는데 뒤에서 누가 서류를 내밀었다. 내가 이 시신의 딸이었다는 확인서에 사인을 했다. 아빠는 다시 스테인리스 안으로 들어갔고 관리자는 내 손에 알코올 세정제를 뿌렸다. 


이런 날은 그 마지막이 너무 선명하다. 내가 아빠에게 전화할 때마다 마지막에 “전화 고맙다”했던 목소리까지 들린다. 9주가 더 지나면 안 들렸으면 좋겠다. 아니 계속 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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