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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도 못 먹네

드디어 이혼_16

by 음감

세화는 어머님이 이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어서 요양원을 알아봐야 한다는 말을 지창에게 짧게 전했다. 잠깐 침묵을 지킨 지창은 세화가 예상한 말을 했다.


"당신이 우리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면 되잖아."


세화는 준비한 대답을 했다.


"화장실도, 식사도 혼자서는 아예 안 되는 수준이야. 욕창 안 생기려면 2시간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야 하고. 전용 매트리스도 있어야 한대요. 집에서는 어려워요."


세화는 의사에게 들은 말을 덤덤하게 전했다. 지창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다 급히 말을 이었다.


"그럼 어머니 집은? 어차피 계속 누워있어야 하면 어머니 집 정리해야 하는 거 아냐?"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데 세화는 지창 표정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월세 굳는 게 자기 엄마 아픈 거보다 좋을까. 시어머니에게 별로 정이 없는 세화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어머니가 가여워졌다. 그런 세화 마음을 알 리 없는 지창은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제안을 한다.


"음, 그럼 일단 짐을 빼야겠네. 쓸만한 물건은 그래도 좀 있겠지? 당신이 가서 정리 좀 해봐. 울 엄마 옷 많은데 당신이 챙겨서 입어."


선심쓰듯 마지막 말을 툭 뱉는 지창에게 세화는 설명할 힘도 없다.


"어머니 옷이 나한테 맞을 거 같아요?"


지창은 말없이 세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혀를 쯧쯧 찬다.


"그러니까, 볼품없이 비쩍 말라 비틀어지니 줘도 못 먹네."

"당신 어머니 옷은 맞아도 안 입어."


뜻밖의 반응에 지창이 놀란 눈으로 세화를 바라본다.


세화는 자신이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은 순간, 마치 고요한 바다 속에서 숨겨진 격류가 터져 나오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뜨겁게 피어오르며 그녀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지창의 경악한 표정이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통쾌함을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선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 씁쓸함은 오래된 상처가 새롭게 아물면서 생기는 흉터 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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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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