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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길을 걷다(2)

아브람과 사래

by 음감

아브람이 뒤돌아선 사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며 소리쳤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고. 보호해주는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사래는 손목을 잡힌 채 피식 웃었다. 아브람은 그 모습에 괜히 더 소리만 지를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 임기응변으로 둘 다 살아남은 건데 좀 덮어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여자가 뭐 그리 꼬장꼬장해.”


사래는 웃음기 거둔 맑은 얼굴로 아브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어떤 원망도 없이 고요하고 깊기만 했다. 아브람은 엉겁결에 잡은 손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 내가 당신을 떠나면 제대로 살 수 없을지 몰라. 내가 당신을 떠났든, 당신이 날 버렸든 나는 그저 무리에서 쫓겨난 소박맞은 여인이겠지.”


“어, 그래. 당신은 현명한 여자니까 이렇게 가버리는 게 훨씬 손해라는 거 알거야. 그리고 아이는?”


사래는 다시 미소지은 얼굴로 아브람을 바라봤다. 아브람 마음 어디에선가 무거운 게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더 가슴을 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될 거 같았다. 절대신 예언까지 가져왔는데 니가 뭘 어쩔거야.


"난 이제 아이 욕심도 없어."


고대 근동 시대의 아이란 여자에게 축복의 상징이었다. 반대로 아이 없는 여자는 저주받은 여자였다. 사래는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터라 신이 내린 예언에만 매달려 있었다. 아브람은 갑자기 돌변한 사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래의 말이 끝나자, 사막의 바람이 한 차례 강하게 불어왔다. 뜨거운 모래가 얼굴을 스치고, 머리카락을 마구 흩뜨렸다. 아브람은 눈을 찌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사래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 사막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아이 욕심이 없다고?"

아브람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신께서 약속하셨잖아. 우리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거라고. 우리가 함께 그 축복을 기다려야 해."


사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축복을 기다리는 게 아니야. 아브람, 난 이제 나 자신을 기다릴 거야."


아브람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그의 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가 힘없이 풀렸다. 그는 사막의 먼지를 털듯 애써 태연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지?"

그의 목소리는 건조한 바람처럼 퍽퍽했다.


"네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네 존재 이유는 뭐가 되는 거냐?"


사래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처럼 어두웠고, 한없이 깊었다. 그녀는 고요히 입을 열었다.


"아브람. 나는 누군가의 아내나, 아이를 낳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나'야. 그것만으로 충분해."


그 순간, 어디선가 마른 가지가 툭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래와 아브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바위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브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너무 오만해졌어. 신께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셨는데, 네가 그 길을 거부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사래는 고개를 저었다.


"아브람, 우리는 함께 걸어온 게 아니었어. 내가 너를 따라왔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나는 내 길을 찾을 거야. 그리고 그 길 위에 내 발자국을 남길 거야."


아브람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사래는 그의 눈 속에서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을 읽었다. 그는 그녀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그의 곁에서, 그의 뜻대로 움직일 거라고 믿었다.


사막의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갔다. 모래 언덕의 윤곽이 길게 드리워졌고, 공기는 더 뜨겁고 무거워졌다. 마치 둘 사이의 긴장처럼.


"어디로 갈 거야?" 아브람이 물었다.


사래는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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