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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대리 Apr 13. 2023

나는 천만 원짜리 다이아반지만큼 가치 있는 사람

가끔은 이런 영롱한 자극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10년 간 만나온 남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다.  


헐리웃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부터 결혼에 대한 로망을 그려온 내 머릿속엔 다이아몬드 크기=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크기란 인식이 있어왔기에 누군가로부터 청혼을 받는다면 최대한 영롱하고 큰 다이아몬드를 내 손에 끼어줬으면 했다.


알이 크고 영롱한 다이아몬드 반지,

이게 다른 예물, 식장, 집, 차 등등에는 욕심도 관심도 없지만 유일하게 내가 결혼에 대해 어릴 적부터 가져온 로망이다.


주말에 같이 와서 자며 원하는 반지를 미리 봐놓고 있으란  남자친구의 말에 대부분의 여자들과 달리 쇼핑을 싫어하는 나는 가장 최근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신부들의 전쟁'에서 주인공들이 프로포즈 반지로 로망을 품어온 민트색 박스,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링으로 청혼을 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퇴근길에 명동 롯데백화점 1층 티파니 매장으로 직행했다.


나중에야 결혼한 지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보통 다이아몬드 반지를 고르기 위해 최소 브랜드 3곳은 비교하는 것 같았고, 정말 많게는 백화점에 있는 모든 브랜드 매장에서부터 청담, 종로까지 몇십 곳을 둘러보는 케이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인들처럼 굳이 많은 브랜드를 가보지 않아도 분명 '얘가 바로 내 거다'라는 느낌이 바로 오는 반지가 있을 거란 무근본 확신이 있었기에 미리 특정 모델을 찾아보지도,  후기도 검색하지 않은 채 일단 가서 껴보잔 마음으로 화려한 티파니 매장 불빛 아래에 섰다.


참 신기하게도 100개가 훌쩍 넘어 보이는 반지의 숲 속에서 마치 날 좀 바라봐달라는 듯 혼자만 불빛을 뿜어내는 반지가 하나 있었고, 스타일, 크기, 영롱함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맘에 쏙 드는 1순위 반지를 포함해 직원분 추천으로 껴본 2, 3순위 반지의 모델명과 가격을 남자친구에게 공유했다.


1순위 반지의 정확한 가격은 내 몇 달치 월급인 1,020만 원이었고, 2순위는 580만 원, 3순위는 390만 원이었다.


남자친구가 사실 얼마를 반지 예산으로 잡고 있다고 알려주지 않아 내 나름대로 가격대 별 옵션들을 전달하긴 했지만, 나처럼 직장인이자 돈 쓸 곳이 많은 자취러 남자친구 주머니 사정 상 어쩌면 1,020만 원은커녕 390만 원 짜리 사주고 나면 다음 월급 때까지 저녁은 편의점에서 해결해야 할 수도 있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옵션들 중 하나를 갖게 된다면 무척 기쁘겠지만 좀 더 저렴한 옵션을 찾아볼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주말이 되길 기다렸다.


결국 내 남자친구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제목에서 밝혔듯 남자친구는 1순위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손에 끼어주었고, 마침 티파니에서 주는 Marry Me가 적힌 민트색 박스를 열며 한 번 더 '나랑 결혼해 줄래'를 물었다.

이미 연인 간에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는 이나 셀프 선물로  명품을 구매하는 분이라면 내 글을 보고 '별 것도 아닌 걸로 글을 쓰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남자친구의 다이아몬드 선물에서 느낀 감정반지의 가격에서 오는 우쭐함이나 갖고 싶선물로 받은 것에 대한 만족 같은 일회성 감정이 아닌, 가족이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이, 더군다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오롯이 날 위해 이렇게 큰 금액의 선물을 마음을 담아 내게 주었고 그걸 받은 대상이 나란 사실에서 오는 감사함, 황홀함, 내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나 소중한 존재임을 찐하게 확인한 기쁨, 감격, 어쩔 줄 모름, 남자친구의 따뜻한 마음과 반짝반짝한 반지에 걸맞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 책임감 등이 섞인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복잡하고 묵직한 감정 등의 총체다.


남자친구의 청혼 반지가 나에 이렇게나 많고 깊은 감정을 선사한 건 아마 지난 30년 간 내가 설정해 온 나의 행복 종(bell)이 '내 성과에 대한 타인의 인정', 특히 그 인정이 급여 인상이든 내가 소소하게 운영 중인 온라인 클래스의 판매량 증대든 '금전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에 한해서' 딸랑딸랑 울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표면적 의의가 있었지만 결국 재작년에 한 이직도 사실은 더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 했고, 올해로 운영 3년 차인 온라인 클래스도 사실은 소득 파이프라인 다변화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이직 성공 후 천만 원 단위의 연봉 상승을 이뤄냈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긴 했다. 내 가치를 알아봐 준 회사에 감사했고, 그만큼 기여해야지 하는 열정도 잠시동안은 넘쳐났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고, 내가 매일 마주하는 어떤 사람도, 내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팀장님도, 연봉 협상을 한 인사팀 담당자도 사실 그들 하나하나가 나를 천만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소중한 사람으로 판단해 기꺼이 연봉 인상을 해주었다기보다는 당장 일손이 너무 부족해서, 올해 연봉 인상을 해줄 수 있는 pool이 비교적 널럴해서 등 당시 내 채용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과 회사의 자금 사정이 맞아떨어져서 최종 제안 금액을 통보한 것이었을 테다.


한 달에 평균 10명 정도가 수강하는 내 온라인 클래스 역시 가끔은 정말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서 내 강의를 찾으셨지? 할 정도로 organic 하게 인입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강의를 판매하는 웹사이트에서 전체 강의 대상 할인권을 제공해서, 내 강의가 랜덤으로 메인 페이지에 게시되어서 등 정말 내 콘텐츠가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닌 운 좋게 얻어걸린 갖가지 요인들 덕분에 판매량이 늘어난다.


이런 케이스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아무리 큰 금전적 보상이 뒤따른다 해도 이게 내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옳은, 적절한 보상이 맞는 걸까? 사람들은 내가 이 정도 보상을 받을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면서 급여가 인상되어도, 수강생이 늘어나도 전처럼 기쁘다거나 행복한 감정이 들지 않고, 또렷한 답을 찾을 수 없는 허무함과 현타가 최근 몇 개월 간 지속되어 왔었다.


그렇기에 좀 딱하게도 행복은 계속 성과를 만들어냄으로써 주변의 인정을 받아야만 지속된다고 믿어온 내 삶의 기준에서 남자친구를 위한 KPI를 수립하지도, 남자친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연간 일정도 세우진 않지만 내 존재 자체로 날 소중하게 여겨주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해 준 남자친구의 선물이 내 행복의 기준을 다른 쪽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남자친구는 결국 3개의 옵션들 중 이 반지를 사준 이유나 원래 생각했던 예산 등 프로포즈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 그도 이 영롱한 돌덩어리를 내 손에 끼어주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래도 너무 비싸'보다는 '연대리는 이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가치 있는 존재니까!'라는 생각을, '이거 사주면 앞으론 편의점 도시락만 사 먹어야 하나'라는 고민보다는 '이 반지 끼워주면 연대리가 정말 좋아하겠다!'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브런치를 빌어 예비 신랑이자 남자친구 최모찌 과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프로포즈받을 때 느낀 감사함, 황홀함, 기쁨, 감격스러움, 멋진 인간이자 든든한 반려자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 책임감을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의 행복 종은 내 성과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따른 금전적 보상이 일어날 때 울리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나를 믿고 위해주는 이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거나 신뢰가 쌓일 때, 혹은 누군가를 위해 내 역량이 의미 있게 쓰일 때 이전과는 다른 따뜻하고 경쾌한 딸랑딸랑 소리로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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