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제 옷 샀는데 대리님 결혼식에 입고 가면 되겠다!
me-oriented 사회에서 찐-축하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올해 11월에 결혼한다.
새로운 소식을 주변에 알리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 상 식장을 잡은 날부터 동네방네 이 행복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지만, 굳이 회사에 이 얘기를 미리 해봤자 일보다 결혼 준비에 정신팔겠구만!하는 부정적인 시각이 혹시라도 있을 듯하여 웬만하면 회사에 결혼 사실을 최대한 늦게 알리려 했다.
하지만 주말이 끝난 월요일 티타임, 주말에 뭐 하고 보냈냐는 질문에 "집 보러 다녔어요"라고 하면 이제 독립하는거냐며 동료들의 대학 시절 자취 썰과 함께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이렇게 대화 중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는 결혼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가까운 4명에게 어찌어찌하여 올해 말에 결혼하게 되었다, 식장만 잡은 상태라 스드메를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라는 동일한 레퍼토리로 결혼 사실을 전달했다.
내가 그려온 결혼 커밍아웃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은 약간의 과장이 섞인 놀람+박수+기쁨+축하였다. 나 역시 누군가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렇게 반응했으니까.
과하게 오버를 하거나 호들갑까지는 안 바란다고 해도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결혼이라는 주제가 항상 핫 토픽이기에 청혼은 어떻게 받았어요? 라든지 반지 좀 봐봐요! 등의 결혼 결심 계기나 과정에 대한 질문, 후속 반응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 소식에 이어진 동료들은 반응은 내 이런 기대에 절반도 못 미쳤다ㅎㅎ 부업으로 카페 창업을 꿈꾸는 첫 번째 동료의 반응은 이거다.
"오! 축하드려요. 11월이요? 오 어제 제가 마침 아울렛에서 겨울 원피스 샀는데 대리님 결혼식 때 입으면 되겠다. 사실 하객룩으로 산 옷은 평상시에 자주 못 입잖아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 두 번째 동료의 반응은 이거다.
"그 식장 아쿠아리움 옆에 있는 곳 아녜요? 우리 아들 수족관 구경시킨 지도 오래되었는데 대리님 결혼식 갔다가 물고기 보고 오면 딱이겠네요. 거기 영화관, 수족관 외에는 주차비 모두 유료인 거 알아요?...어쩌구저쩌구.."
함께 소식을 들은 세 번째, 네 번째 동료의 반응은 이거다.
"우와 이것저것 준비하시느라 돈 많이 드시겠어요. 그나저나 올해 급여 인상률이 꽤 높겠던데, 결혼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되시겠네요. 혹시 저희 임금 인상률 플러스 알파 금액은 언제 결정 나는 지 들으신 것 있나요?"
네 명의 동료 모두가 대화의 시작은 나의 결혼 소식이었지만 결국은 본인들의 이야기로 대화를 전환했고, 결국 우리들의 대화는 그들이 꺼낸 주제로 마무리되었다.
혹시라도 내 결혼 소식이 아직 싱글인 그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거 아냐? 혹은 이제 일 좀 대충대충 하는 거 아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딱히 그들은 내가 유부녀가 되든 말든 남자친구랑 헤어졌든 말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올해로 만 60세가 된 아빠가 말하길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땐 과묵하기만 하던 남자들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전부 본인들 각자 얘기를 하느라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무도록 이야기 꽃을 피운다던데, 내게 반응을 해준 동료들은 모두 만 35세 미만인 걸 보면 본인 위주 대화법을 애용하는 나이대가 낮아진 게 아닌가 싶다.
나이대가 낮아진 것에 더해 절반 이상의 근무자가 경력직인 신사업 조직에 속한 나로서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걸 개진하는 걸 즐기는 환경에 있으니 동료들이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add-on 하기보다는 me-oriented, 본인 의견을 중심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게 어찌 보면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동료들에게 찐-축하를 받아서 뭐하냐고 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료의 결혼식, 동료의 출산, 동료 아이의 첫 뒤집기! 각자의 입장에서는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의미 있는 이벤트 아닌가! 그럼 좀 이번 한 번만이라도 내 결혼식, 내 지인의 출산, 내 사촌 동생의 뒤집기 일화를 끌어오는 게 아니라 그 행복한 소식을 전하는 동료의 입장에서 fully 축하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게 어떨까?
어찌 아는가. 당신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은 동료가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고마움에 차 한 잔을 더 살 수도, 다음번 당신의 행복한 이벤트에 찐-축하를 해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