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9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업무가 있던 일요일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 했다.
금요일에 상급자에게 피드백받은 보고서를 월요일까지 수정하여 제출하는 루틴이 반복된 지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지난주에는 무려 일요일 저녁 9시에 팀원들과 보고서 리뷰에 대한 화상 회의를 시작해 새벽 1시에 종료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일어났었다. 옆에서 이런 날 보던 동생은 언니 해외 컨콜하는 부서로 옮겼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지지난주는 토일을 꼬박 보고서 수정에 쓰느라 집안일도 못 거들고,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도 가지 못해 가족들과 애인 두 쪽 모두의 원성을 듣기도 했었다.
주말까지 회사에 반납하는 일이 지속되다 보니, 번아웃이 온 거 같다. 도저히 이번 주는 주말을 반납하고 회사 일에 매진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말 온몸으로 매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주 금요일 퇴근길에는 노트북도 들지 않고, 주말 근무 결재도 올리지 않은 채 회사 일은 모두 off 하고 내 삶에 온건히 마음과 시간을 쏟기로 했다. 토요일엔 예비 시댁 식구들과 식사도 하고, 일요일엔 하루종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까지는 정말 상쾌하게 숙면을 취한 뒤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왠 걸. 12시, 새벽 1시, 2시, 3시..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내가 맡은 부분을 수정해서 제출하려면 최소한 오전 6시에는 집에서 떠나야 하는데, 잠이 오긴커녕 정신이 말똥말똥한 것이었다. 서른이 넘고 나서부터 나는 밤을 자의든 타의든 새본 적이 없고, 잠을 설치는 날은 그 다음날 얼굴에 뭐가 난다던지, 열이 난다던지 단순히 졸린 것 이상의 컨디션 난조가 생기기에 최대한 잠을 잘 자려고 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호주에서 놀러온 친구와의 저녁 약속까지 참석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나는 어제 일어난 오전 10시부터 오늘 밤 10시까지 이틀 내내 깨어있는 셈이 된다.
왜 나는 잠에 못 들었을까. 일부러 숙면을 취하려고 석촌호수도 두 바퀴나 돌았고 잠이 잘 오게 도와준다는 아로마 오일도 귀 뒤에 바른 채 침대에 누웠는데도 말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지하철 안에서 이 글을 쓰며 낸 결론은 오늘 회사에서 도착한 뒤 3시간 안에 후다닥 써내려 나갈 보고서에 대한 부담감이 날 불면증 환자로 만든 것 같다.
일이 뭐라고. 사람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내가 굉장히 걱정되었다. 새벽 버스와 지하철은 생각 외로 배차 간격이 매우 성겨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늦게 회사에 도착할 것 같다. 그만큼 내 보고서 작성 시간도 줄어들겠지.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30분 만이라도 눈을 붙이자 생각했지만 부담감? 아니면 스트레스? 강박?으로 인해 잠이 안 오기에 브런치를 쓰고 있다.
제발 이 지독한 야근, 주말 근무, 월요일 아침 보고의 굴레가 종료되었으면 좋겠다. 숫자 하나 더 들어간다고, 워딩 하나 더 들어간다고 okay싸인 안 보내주실 대표님이 그래, 가보자고! 하시는 거 아니잖아요 상무님, 제발 직원들 좀 그만 힘들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