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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대리 Mar 11. 2024

프롤로그

남에게 관심없던 마케터가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며 깨달은 점들을 적습니다.

딱히 취미 없음. TV 안 봄. 구독하는 OTT 서비스 하나도 없음. 친구 없음.


주변에서 보면 '쟤는 저런 것도 안 하면 남는 시간에 뭘 하며 살까' 궁금해 할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내가 그나마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나'다.


좋게 봐주면 Z세대 끝자락에 들어가는 나이지만 덕질하는 대상도 없고,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며 자랑하는 지, 연예인 누구랑 개그맨 누가 사귀는지 나는 신기하게도 별로 관심이 안 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난 10년 간 대기업에서 마케터 생활을 했지만, 사실 고객님들이 원하는 것에 귀기울이기보다 마케터로서 내가 해보고 싶은 거, 재밌어보이는 콘텐츠들을 시도해왔다. 그 덕분에 다행히 지난 10년 간 회사는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며 착실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훌륭한 마케터는 못 된 것 같다.


이렇게 주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가진 특권이 하나 있는데, 누군가는 직장인 이직 사유 1위가 '사람' 때문이라고던데, 나는 여기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팀에서 프리 라이딩을 하는 동료가 있어도 나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또는 '본인만 손해지'라는 생각 정도 말고는 별 감정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동일한 상황에서 MBTI 중 대문자 F 성격을 가졌던 한 선배는 프리 라이더 동료를 보고 '쟤는 분명 지금 나를 무시해서 저러는거야.'라며 대놓고 따지지는 못했지만 속앓이를 굉장히 많이 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런 선배에게도 보통의 여자 후배들처럼 감정이입을 하며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는 따스한 동료는 되지 못했다.  


이런 '갈수록 주변에 더욱 무감각해지던' 내가 올 초 우연한 기회로 HRD 포지션으로 직무를 바꾸게 되었다. 전에 모시던 전무님이 HRD 부문으로 적을 옮기시면서 나를 데려가주신건데, Human Resource를 Develop하기는 커녕 Human 자체에 관심이 없는 나를 HRDer로 추천하시다니.


아마 전무님도 일로 윗 분들의 인정은 받으셨지만 일이 아닌 직원 하나 하나에게는 관심이 크게 없던게 아닌가 싶다. 나처럼 말이다. 아무튼 갑자기 HRDer가 되어 팔자에도 없던 구성원 인터뷰를 하고, 설문을 돌리고, 소원 수리 하는 일을 온종일 하게 되면서 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사람 유형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겉으로는 한없이 젠틀하지만 속은 시커먼 키보드 워리어 팀장님,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본인의 재능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천사 대리님, 서구권에서는 친근감의 표시로 이성 직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임원.. 입사 전 서류전형, 인성검사, 실무면접, 임원면접까지 촘촘히 설계된 테스트를 거쳐 동일한 기준 아래 선발된 사람들일텐데도 이렇게나 가지각색이라니. 


대기업에는 탁월한 사람들만 있을거야! 대기업 팀장님은 일일신우일신하면서 구성원을 격려해줄 게 분명해! 대기업 다닌다고 하면 일단 평균 이상이라 보면 되겠지?와 같이 인터넷에 떠도는 대기업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실사례를 통해 검증하고 대기업에는 어떤 인간 군상이 있는지 훔쳐보며 배울 점은 취하고, 잘못된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으며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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