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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Sep 19. 2019

15. 해먹는 즐거움

강제로 늘어나는 요리실력 & 외식비 문제

10만~40만 원을 하는 고기굽는 그릴 세트. 간단한 햄버거패티, 스테이크, 야채구이까지 가능하다. 비싼 외식비 때문에 그릴을 사서 가족끼리 야외식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요리를 잘 못해요." 내 말에 요리를 업으로 삼으시는 분이 말씀하셨다.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얼마나 쉬운데요. 하기가 싫으니까 안 느는 걸꺼야."

    맞는 말이었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친정 옆에 산다는 이유로 이것 저것 갖다먹는 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김밥천국'에는 늘 저렴한 가격으로 치즈라면, 우동, 돌솥비빔밥, 쫄면을 먹을 수 있었다. 국물에 김밥 한 줄. 캐나다에서 얼마나 광화문 김밥천국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밴쿠버에는 김밥천국이 코리아타운에만 있다. 글자로고가 살짝 틀린 것으로 봐서, 한국의 김밥천국 체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차로 50분 떨어진 그 곳을, 쉽게 갈 수는 없다. 


    캐나다 학교들은 각자 점심을 싸온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 엄마들이 처음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워낙 알러지 있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다른 아이들에게도 "피넛버터 제품, 견과류 제품은 절대 가져오지 맙시다"라는 알림장 내용이 써 있었다. 우유, 계란에도 알러지 있는 아이들이 있다. 각자 자기 먹을 것을 싸오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도시락이라고 해도 별 거 없다. 여기 아이들은 '간편한' 모닝빵이나 에너지바, 과일 약간을 싸 온다. 어제 저녁 먹다가 남긴 피자를 싸오는 아이들도 있고, 간혹 만두나 식은 파스타 샐러드를 꺼내는 아이들도 있다.


    아, 한국인은 이미 밥에 길들여져 있는 것인가. 아이들은 몇 번 먹은 빵쪼가리가 싫다고 했다. "밥 먹고 싶어요." 김치 냄새가 나면 교실 안이 냄새로 가득찰 것 같아서, 볶음밥과 불고기, 삼각김밥, 주먹밥을 번갈아 가면서 싸줬다. 가끔 멋진 도시락을 싸주는 한국 엄마들이 부럽긴 하다. 나는 작은 도시락 하나를 싸려고 해도, 온 주방이 지저분해진다. 맛은 그냥 그렇다. 시장이 반찬인지, 어떤 날은 '스팸의 힘' 덕분으로 아이들이 "정말 맛있었다"고 칭찬해주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처럼 배달문화가 발달한 곳은 없다. 성수동 효자동 족발이 많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이 곳 한식당들은 한국과 똑같은 맛을 구현해내는 곳은 별로 없다. 뭔가 약간 부족하거나, 맛있으면 많이 비싸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식당을 가다가 점차 유튜브를 보며, 블로그를 보며 스스로 해먹기 시작한다. 나가서 외식을 하려고 하면, 최소 10% 정도는 줘야 하는 인건비 tip이 있기 때문에 4인 가족이서 먹으면 최소 70달러는 각오해야 한다. 100달러 넘기도 쉽다. 그럴 바에는 슈퍼에서 새우, 스테이크 고기를 사다가 어떻게든 요리를 하려고 한다. 


    그릴을 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름철 공원에서 지글지글 연기를 뿜으며 냄새를 자랑하는 쏘세지. 그리고 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 구운 토마토. 이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그릴부터 불 3개까지 대형 그릴을 큰 맘먹고 장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릴만 산다고 끝은 아니다. 청소도구, 불판, 호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베란다에 작은 그릴이라도 두는 이유는 '사 먹는게 별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캐나다에 요리 솜씨가 뭐가 필요한가. 샐러드에다가 드레싱만 뿌려먹는 놈들인데." 전라도 경상도 출신 이민자 아주머니들이 하는 말이다. 작은 무침에도 이런 저런 양념을 섞고, 무치고, 데치고. 전 하나 만드는 데에도 공이 들어가고. 명절 음식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캐나다는 쇠고기와 채소, 그리고 맥주! 와인!이 있다. 그래서 요리 실력이 조금 있다면, 이 곳에서 즐겁게 해먹으면서 사람들과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온 맥주, 캐나다 밴쿠버 근처의 오카나간 밸리 와인 등 주류도 한국에 비하면 다양하고, 값도 비싸지 않다.


    밴쿠버는 여름에는 날씨가 화창하지만, 늦가을부터 겨울은 '레인쿠버'라고 불릴 정도로 비가 잦다. 겨울 한 주 내내 비만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밴쿠버 날씨 좋다는거 거짓말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겨울에 이민오면, 그 다음 여름까지 잦은 비 때문에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 것이다. 나 역시 작년 겨울, 와인와 '마블 시리즈' 영화를 독파하며 겨울밤을 나기도 했다.


    캐나다 와서 좋은 공기 마셔서 폐가 건강해지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지금은 간이 문제다. 그래도 저녁 한 잔, 끊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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