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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Dec 10. 2019

20. 서양부모, 동양부모

무엇이 자식을 위하는 길일까

"나는 뚱뚱하잖아" "체육 못하잖아"하던 아이는 캐나다와서, 손에 철봉 굳은살이 박혔다. 겉보기에는 안 좋지만, "내가 만들었다"며 뿌듯해한다. 그래도 여전히 게임을 좋아한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후문으로 가는 길에 20여 개 되는 계단길이 있었다. 높이로 따지면 그리 높지 않지만, 자전거를 지고 내려오려면 꽤 가파르게 느껴지는 길이다.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헬맷을 쓰고 중간에 서 있었다. 영어가 아닌 다른 말인데, 느낌에는 독일어 같았다. (프랑스어, 일본어밖에 모르기 때문에 무엇인가 딱딱한 말투면 독일어인가 보다 하고 혼자 생각한다.)

    엄마의 언어는 모르지만, "빨리 내려와"라는 말 같았다. 아이는 계속 조용하게 보채고 있었다. 순간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자전거를 지고 내려와 줄까?'란 생각이 들었다. 도리도리. 아니지. 이것이 한국인의 오지랖이다. 저 엄마가 저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애만 손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뒤따라 손자를 소중하게 잡고 내려오던 중국인 할아버지가 그 아이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 처음 보는 아이에게 재빠르게 다가가 자전거를 조심스레 들고 내려왔다. "너를 도와주고 싶어"란 환한 미소와 함께. 하지만 나는 그 결말을 보고 말았다.


    앞서 자신의 자전거를 지고 내려와, 아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엄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잘해주고, 욕먹는 경우다. '아까 자전거 안 내려주기를 잘했다....' 내 마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인 할아버지의 호의가, 나는 이해가 갔다. 손주 같은 아이가 헤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내가 10초만 도와주면, 저 아이가 편해질 텐데. 그런 마음일 것이다. 캐나다에는 손주 손녀를 잘 키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는 중국인 조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엄마의 교육방침에 맞지 않았다.


    일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신기한 광경을 종종 본다. 계산할 때도 그렇다. 아버지가, 남편 같아 보이는 사람이, 남자 친구 같아 보이는 사람이 계산을 몽땅 다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Separate Bill'을 가족 간에도 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언니가 내주는 법도 없다. "따로 계산해 주세요." 친정엄마랑 딸-손자가 따로따로 계산하는 것도 봤다.


    하도 계산을 따로 하는 '가족 같아 보이는' '연인 같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빌을 따로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면 몇몇 사람은 웃는다. "36년 같이 살았는데 오늘 반응이 재밌네요(재혼, 노인들의 데이트도 많기 때문에 예단할 수 없음)" "(남녀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이는 경우) 우리가 어떤 사이로 보여요?" 등등.. 관상을 보며, 빌을 어떻게 드려야 하나 혼자 가늠해 보인다. 아동과 부부가 온 경우가 제일 심플하다. 아버지가 낼 것이기 때문에.

    자식이 내가 시킨 음식을 '탐낼 때' 어떨까. 보통의 동양 부모라면, "그래 너 다 먹어. 부족하면 또 시키자"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먹고 싶어도, 아이가 먹고 싶으면 내 욕구를 조금은 참을 것 같다. 그런데 상당수 서양 부모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엄마, 저 그 롤 하나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제 꺼랑 바꾸실래요?"라고 조심스레 묻는 아이를 보았다. "엄마가 계모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부모의 음식에 손댈 때, 아이들이 조심하는 모습을 보았다. 의견을 최소한은 정중히 물었다.


    같은 날인 오늘 저녁, 텅 비었던 레스토랑이 5분 간격, 1분 간격으로 갑자기 물밀듯이 손님이 들어왔다. 사람이 없다며 직원을 줄이는 시간대라, 당황했다. 손님들은 자신만 생각한다. 빨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침묵하고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는 예의 바른 손님들도 있다.


    갑자기 꽉 매운 장소에서 나 혼자 허둥지둥 댔다. 4번 테이블 중국인 모자는 들어올 때부터 급해 보였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들어온 테이블부터 주문을 받았다. 평소였으면 10-20분이면 모든 음식이 다 나왔을 텐데.... 운이 없게도 음식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그 테이블의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운이 나쁜 거다. 그렇게 사람이 없어서 텅텅 비다가, 갑자기 닥치니. 우리라고 별 수가 없었다. 순서가 있었다.


    템뿌라와 음료수까지 먹던 모자는, 아무리 기다려도 드래건 롤과 사시미가 나오지 않자.. 슬슬 조바심을 냈다. 결국 나에게 "나머지는 투고 용기에 싸주세요"하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게 조바심이 난다. 가서 설명을 했지만, 음식이 빨리 나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인 엄마는 "애가 내일이 시험이에요. 너무 급한데, 음식이 너무 안 나오네요"라며 불평을 이야기했다. 이해할 것 같긴 한다. 그러나 셰프의 짜증도 극에 달했다. 나는 중간에 낀 신세였다. 셰프의 짜증도 이해가 가고, 중국인 엄마의 조바심도 이해가 갔다. 이 때는 내 '을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몇 번 온 적 있는 엄마는 진상은 아니었다. 그냥 중학생 아들에게 빨리 음식을 먹이고 싶은 어미의 심정일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오늘 갑자기 손님이 닥쳤다"며 얼굴로 미안함을 표시하는 나.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엄마는 "이 잔돈 좀 더 바꿔주실래요... 내가 팁을 줘야 하는데 잔돈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지금 주신 것만 해도 충분해요. 진짜 저번에도 오셨잖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 오늘은 정말 저희가 어쩔 수가 없네요." 그 어머니는 화가 조금은 수그러든 것 같았다. 내가 비굴한 게 아니라, 사람이 너무 화가 날 때는 조금 톤다운이 필요하다.


    그렇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니까 손님이 또 없다. 진짜 "물 들어올 때"는 짧은데, 손님의 분노는 이럴 때 생기나 보다. 전체적으로 보니, 매출이 좋은 날도 아니었다.


    독립심을 키워주지만, 때로는 정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서양 부모. 자식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가슴 아파하고, 옆에서 학원이며 튜터며 붙여주며 자식의 미래를 위해 한 없이 열심히 사는 동양 부모. 무엇이 자식을 위하는 것일까. 40세가 되어, 타국에서 맨날 친정엄마가 해준 밥맛을 그리워하는 나는... 뭐가 옳은지, 나는 내 자식에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저 자식이 내가 죽어도, 밥벌이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나쁜 놈, 나쁜 여자 만나지 말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쓰고 나니, 참으로 어려운 목표를 또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그저.. 넘어져도 못 일어날 만큼 아프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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