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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Dec 02. 2019

19. 후천적 맥가이버, 케네디언들

손을 쓸 줄 알면 돈을 법니다.

한국인들은 가구나 물건을 상대적으로 곱게 쓰는 것 같다. 그래서 집주인들도 한국인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집을 되도록 깨끗하게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밴쿠버에서 첫 이사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늘었다. 사람을 부르는 이사비용 자체가 생각보다 정말 비쌌다. 비싼 걸 감안하고 견적을 내봤는데도 비쌌다. 2018년 캐나다에 처음 올 때, 나는 물정 모르고 돈을 펑펑 썼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이려면 변두리에 살아야 하는데, 사실은 아이들 학교 문제로 좋은 동네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전세없는 이 나라에서,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1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반 지하에 집세를 받을 수 있는 공간들을 리노베이션 하는데, 이를 garden suite, basement suite 등으로 부른다. 평수가 작은 곳으로 가다보니, 이전에 야심차게 샀던 침대 프레임들이 다 쓸모 없어지고 처분해야 했다.


    산 가격을 생각하면, 이 가격에라도 내놓는데 아까웠다.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에 처음 내놨다. "동포가 나의 이 고급 프레임을 가져다 쓰신다면 기쁜 마음이겠다"는 생각에 퀸사이즈 프레임과 헤드보드를 과감하게 내놓았다. 연락 없음. 무료로 내놓은 몇 가지 가재도구들만이 빠르게 없어졌다. 한국인이 가난한건가? 왜 승용차에 실릴 정도인 물품들만 없어지는 걸까? 이거 실제 매장에서 사면 꽤 비싼데.... 더 내려놓아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트럭도 없고, 조립할 능력도 없고...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가장 활발한 매매사이트 "Craigslist"에 올려놓았다.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보다는 훨씬 비싸게... 연락이 빗발치게 올라왔다. 사진과 함께 올려놓으니.. 저 가격에 헤드보드와 프레임을 사는 것이 괜찮았나 보다. 더 비싸게 올릴 걸 그랬나 후회했지만... 사실은 나도 이삿날이 다가와 빨리 처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살 때는 비싸게 샀는데, 좀 후회스러웠다.


    두 셋트가 있었기에 먼저 연락 온 애런과 제임스라는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다. 그들은 바로 당일 날 왔다. 놀라웠다. 정말 괜찮은 핫딜이었나보다. 캐나다는 인건비가 비싸고 남의 손을 빌리는 순간! 팁이며 돈이 늘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언컨데... Craigslist에 올리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를 주고받고, 텍스트를 주고 받으면서.... 파고다 어학원 한달 치 영어공부는 다 한 것 같다. 이들은 폭발적으로 영어를 내뿜으며 자신들이 궁금한 정보를 내게 물어보았다.


    제임스는 침대 하부의 나사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지 궁금해했다. 밑의 바닥 나무가 어떤 재질인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었지만) 예전에 구매했던 침대 프레임 하단 나무가 매우 부실한 재질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너무 디테일한 질문에 내가 손들었다. "미안해, 나 외국인이야. 그리고 나 기계나 드라이버 되게 몰라. 사진을 차라리 많이 찍어서 보내줄께"


    싼 가격에 내놓은 것이 아까웠는지, 제임스는 말했다. "나 이스트 밴쿠버인데 지금 갈께."


    제임스의 차를 본 순간, 과연 그의 차에 퀸사이즈 베드프레임이 해체한다 해도 실릴까 의아스러웠다. 갤로퍼 같은 차량에 판떼기를 하나 걸치고 왔다. "Are you sure?" 공구함을 든 제임스는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스쿠류 드라이버로 풀고, 우선 헤드보드를 분리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판상을 옮겼다. 실질적인 시간은 15분 정도. 여자인 내가 판상을 계단으로 낑낑대면서 보조해 내려보내는 것이 힘들었지, 장정 두 명이면 15분에 거뜬하게 된다. 진짜 빅딜인 셈이다. 못 해체하고 못 실어나르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잘 살펴보면 나 같은 '기계치'들이 내놓은 보물같은 물건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한 에런은, "미안! 공유차 Zipcar 예전 이용자가 너무 늦게 반납했어!!!"하면서 들어왔다. 공유차 1시간 빌리는 비용이 그리 크지 않은데.. 여자친구랑 둘이 침대 프레임을 실으러 왔다. 그 역시 내 눈에는 "대단한" 스쿠류 드라이버 셋트를 꺼냈다. 아! 이래서 케네디언 타이어라는 큰 샵에서는 이런저런 공구들을 파는구나.. 캐나다는 인건비가 비싸니까,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 각자 조립하고, 둘이서 힘을 합치고, 시간되는 친구끼리 함께 옮기면 돈을 엄청 아낄 수 있는거다.


    어떤 물건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심도 없던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집에 있는 전구를 갈려고 했는데, 이전 주인은 고풍스러운 이상한 전구들만 좋아했는지.. 갈아끼우는 것도 어려운 종류들만 잔뜩 있었다. 그냥 돌리면 되는게 아니었다. '홈하드웨어'라는 집에서 쓰는 전구, 가전, 조경용품 샵에 가서, 전구와 같은 모양을 사려고 사진을 찍어갔다. 갈아 끼워줄 사람이 없기에 처음 보는 필라멘트도 이상한 전구를 낑낑대며 40분 걸려서 간신히 넣었다. 정말 괴로웠다. 백인 할아버지한테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대체 이거는 어떻게 갈아 끼우는 건가요?" 라며 읍소를 했고, 그분은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줬다. "요렇게 저렇게 하면 돼~" 엉엉 울면서 거북이 목이 되게 위를 쳐다보며 간신히 터득했다.


    갤로퍼에 판상을 올리는 제임스와 둘이 낑낑대면서, 영어회화도 많이 나누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속을 터놓는 법이다. 내가 물었다. "너 밴쿠버 얼마나 살았어?" 제임스가 말했다. 제임스는 이스트 밴쿠버에 사는 존 레논 같았다. "(처음에는) 벨이라는 사람이 연락왔던데... 너의 가족이니?" "내 파트너야(*여자친구인데 결혼을 안해서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것 같음)"


    처음에 그렇게 꼬장꼬장하던 존 레넌, 제임스는 "나는 평생 밴쿠버 살았어. 밴쿠버 사는게 좋으니까 다른데 사는 걸 생각 못해서 평생 여기 살았네, 넌?"이라고 말했다. 나는 "난 서울이라고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 사는게 지겹기도 하고 회사다니는게 싫어서 작년에 그만두고 왔어"라고 말했다. 천만 인구에 가까운 서울에 살다가 밴쿠버 와서, 자연은 좋다고.. 예전에는 전화거는 거래처가 너무 많았는데, 이제는 전화 오는 사람도 아예 없다고... 나사 풀어가면서 둘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캐나다 사람과 이야기 해본 적이 처음인 것만 같다. 제임스는 "진짜 깨끗하게 썼네. 그런데 이거 헤드 좀 옮기는 것 좀 도와줘"라고 말했다.


    타올을 받치고, 그의 낡은 차 머리 꼭대기에 판상을 실었다. 와우!!!!!!! 이게 되는구나! 그 뒤에 그는 로프 같은 갈고리로 매기 시작했다. 하드보드지 같은 받침대도 가져왔다. 정말 케네디언들은 대단하다. "나 오늘 하나 배웠다" 내 말에 제임스는 갈고리 사용법을 상세히 알려줬다. "너 집 먼 거 아니지? 이거 싣고 갈 수 있는 거지?" 나의 우려에 제임스는 이제야 좀 웃어줬다. 혼자 해체할줄도 모르고, 설명도 안 되고... 누군가 이 침대를 처리해주길 바라는 동양인 여자. 그리고 맥가이버는 아니어도, 왠만한 싼 거는 빨리 가져갈 능력이 되는 남자.


    제임스에게 돈을 받고, 굿바이를 하며 보냈다. 집으로 들어서려는 데 발견한 그의 갈색 타올. 절약하는 제임스에게는 그 타올이 필요할 것 같아서, 문자를 남겼다. "빨리 다시 와. 타올이 여기 있네." 10분 뒤, 기수를 돌린 제임스에게 타올을 돌려줬다.


    집 앞을 정리하고, 집 안에 들어와서 휑한 침실을 바라보는데..... 다시 발견한 제임스의 맥가이버 공구셋트. 하나는 챙겼는데, 잡다한 나머지는 잊고 갔구나. 우리 둘 다 판상 옮기고 나사 담는데 정신이 팔려 잊었다. 그렇게 세상 쿨하게 행동하더니... 이스트 밴쿠버 존 레논은 빈 구멍이 많은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문자를 보냈다. "나 내일 이스트 밴쿠버 Asian market에 쌀 사러 가야 하는데.. 이거 집 앞에 떨어뜨리고 갈까?" 길게 그의 문자가 왔다.. "아니야.. 내가 가야.. 아니.. 그런데 너무 멀지 않으면, 구글맵 찍어보고.. 혹시 가까우면... Thank you..."  


    고마워요. 오늘 그 어떤 영어공부보다 밀도있게 집중해 배운 날이었어요. 그리고 캐나다에 오래 살려면, 좀 더 공구함과 친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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