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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Dec 31. 2019

21. 식빵까페,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아파트 부동산 보러 갔다가, 가게 자리 알아보러 다니다가


베트남 식당, 태국식당 중 잘 되는 곳들이 많다. 메인 스트리트의 맛집 '안 앤 치'에서 맛 본 스프링롤. 흔하게 먹는 롤이지만, 신선한 야채, 조금 더 신경 쓴 비주얼이 돋보인다

    어느 날, 마음의 우울증이 쿵 하고 또 오고 말았다. 나는 원래 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서비스업이라는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는, 또 그렇게 '또 하나의 연기하는 나'를 만들고 말았다. 일할 때의 나는 밝은 사람이다. 최소한 입꼬리는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있다. 눈은 하나도 웃지 않으면서 말이다. 일식당에서 일할 때의 나는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고자 한다. 손님들의 편의는 최대한 봐드리려고 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건비를 적게 쓰려고 하는 식당의 구조상, 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제 때 고객들에게 가지 못할 때가 많다.  사장님과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난 그냥 손님 편의를 봐드리고 싶은데, 오너 입장은 그러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아이들 있는 손님은 구석자리로 해라" "저 (돈 안 되는ㅡ 시끄러운) 대학생들보고 빨리 계산 받고 내보내라(보통 이 손님들은 눈치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산도 안 한 채 있기 마련이다)" 등등에 최전선에 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서버다.


    매일 팁 정산하고, 일 하고 북적거리는 삶을 살다가.  이렇게 과연 2-3년을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캐나다 "워크퍼밋"으로 오는 길에 대해 많은 이주공사들이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현금 페이백(**캐나다 이민에 적합한 직종으로 세금을 내면서 지내려면 실제와는 달리 '가짜'로 월급을 받는 일이 생긴다. 실제 받는 월급은 그보다 적은데 캐나다 정부에는 그보다 많이 받는 것처럼 행세하고, 세금도 좀 더 내고... 이후에 한인 업주에게 그 차액만큼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일, 인터넷에 '캐나다 현금 페이백'이라고 쳐보면 노예계약으로 인한 많은 한국인 노동자의 체험글과 유튜브 간증글을 볼 수 있게 된다)도 있다. 한국에서 사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워크퍼밋으로 온 한국인들 중에 포기하거나, 또는 포기하지 못하고 2~4년을 많이 고생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워크퍼밋으로 노동자로 사는 것보다 좀 더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업비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최근에는 British Columbia 주에서 외곽지역에 약 1억 원을 투자하는 Pilot program이 생겼다. 스쿼미시 지역처럼 휘슬러 근처의 액티비티 관광객이 모이는 지역에 자전거 샵을 한다던지, 아니면 백인 고령인구가 많은 곳에 요식업을 하는 방식으로 '지역이 필요로 하는 자영업'을 하려는, 경험있는 사람들에게 영주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알아보면, 제한이 많기는 하다.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자영업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자본도 있어야 한다.

유명 베트남 레스토랑의 '오이 물'. 기존의 자국 방식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캐나다 다민족이 호기심을 가지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특이한 컨셉이 성공을 좌우한다고 한다.

    지난 두어달 간 나는 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운전을 하고 돌아다녔다. 운전실력이 늘어서 "광역 밴쿠버 택시 운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영주권이 없어서 외국인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부동산 취득세'를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부동산 콘도(아파트) 건설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엄마에게 전화해 "밴쿠버, 홍콩 사태도 있고해서 계속 유입인구가 있다니까요. 부동산 콘도 사면 앞으로 3년 안에 조금씩 갚으면 된대요"라며 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외부인구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10년째 오르자, BC주 정부는 외국인(영주권,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이 부동산을 살 때, 징벌적인 세금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원주민이 가지고 있는 땅 일부지역은 이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땅으로 원주민들(백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살고 있었지만 백인들이 보호지역에 몰아넣어 피해를 입은 북미 원주민들)이 '100년 대여'와 같은 형식으로 부동산 개발회사에 불하하기 때문이다. 즉 몇몇 지역은 '주 정부 재원으로 들어가는' 주 정부법보다 원주민의 '개발 권리'가 우선된다. 그리고 결국 100년 불하라는 것이, 그 땅의 영속적 권리는 원주민들이 계속 갖고 있기 때문에 원주민 입장으로서는 아파트를 지어 판매하는 것이 유리하다.(그래도 100년 권리라는 것은 외국인이 처음 사서 갖고 사고 파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렇게 마치 밴쿠버에서 아파트를 살 것처럼, 밴쿠버에서 작은 자영업을 할 것처럼. 나는 분주하게 쏘다녔다. 가격을 알아보고 다니고, 맘에 드는 작은 커피가게를 1주일째 드나들었다.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 샌드위치 맛은 있는지, 직접 굽는 쿠키 기술을 내가 전수받으면 할 수 있을지. 그렇게 비지니스 매매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고, 음식을 사먹어 보았다. BC주 캠룹스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 매매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부동산 매매업자와 커피를 마시며 지역동향을 들어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직 식당에서 일하는 근로자다. 그리고, 마음 한 켠으로는 이렇게 영주권을 딴다고 한다 해도, 내가 과연 캐나다에서 무엇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국의 족발이 그립고, 한국 사람들의 '겁나 빠르게 일처리 해주는' 모든 근성이 그립다. 우리끼리 그토록 미워하며 흉보는 '한국인스러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모르는 한국인도 껴안아 주고싶을 만큼, 한국인의 장점이 자꾸만 느껴졌다.


    1억 원이라는 돈, 아주 최소한이라는 자본금을 해올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분주히 열심히 촉을 세우고 다녀본다. 아직은 소자본 자영업자들이 먹고살만하다는 캐나다. 뜻하지 않게 들어간 가게에서 만난 한국인 이민자 사장님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온천 수영장이 딸린 캐나다 모텔에서, 남편이랑 와인잔 기울이다가, 수영장 날파리를 뜰채로 건지면서... 오로라 보러 온 손님들이랑 두런두런 한국 이야기 하면서, 재미나게 사는...그런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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