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후보자 모집 Sourcing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을 채용하려면 평균 32일이 걸린다고 한다.
아무리 채용 프로세스를 간소화한다고 해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은 반드시 소요된다. 왜일까?
어떤 사람을 뽑을건지를 정의하고,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찾고,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검증하고, 그 사람이 출근하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리 각 직무에 대한 정의를 견고히 하고, 인재풀을 보유한다면 기간이 일부 축소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은 논외로 한다.)
아래에서 일반적인 채용 프로세스를 살펴보자.
1. 모집
채용 기안 및 승인
직무기술서 (Job Description) 작성 & Align meeting
채용 홍보 및 다채널 모집 (잡포털, 다이렉트 소싱, 외부 기관 또는 학교 등 인재추천, 내부 채용 등)
2. 검증
서류 전형
테스트 전형 (역량/인성/적성 검사, 실무 테스트 등)
면접 전형
백그라운드 체크 & 레퍼런스 체크
채용 건강검진
3. 채용
처우 협의
입사
이러한 채용 프로세스는 회사마다 순서나 방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게 운영될 것이다. 어느 단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매 순간 제대로 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채용의 결과는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만큼 모든 단계가 중요하다.
다음은 채용 실패의 예시이다.
1) 회사에서 이 포지션을 채용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승인이 날 것 같긴 한데.. 일단 모집을 해보란다. 면접도 일단 본다. 입사 직전이다. 아직도 승인이 안 났다. 최종 결재를 요청해 본다. 이제 와서 뽑지 말잰다. 후보자에게 눈물의 석고대죄를 한다. 진짜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앞으로는 절대 우리 회사에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다.
2) 채용이 필요한 부서에서 옆 팀 윤대리 같은 사람을 뽑아 달란다. 윤대리랑 업무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입사를 시키고 보니 정작 현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윤대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다. 계속해서 입사자가 이해한 것과는 다른 형태의 업무 방식이 요구된다. 입사자는 방황하다 수습기간 중 퇴사를 결심한다.
3) 시간이 부족해서 잡포털에서만 사람을 모집했다. 후보자들이 꽤 많았다. 검증을 열심히 한다. 그중 괜찮은 사람으로 채용을 했다. 지나가던 상무님이 한 마디 한다. "00 협회에 괜찮은 애들 많던데, 걔네보다 나아?" 이미 검증의 기회는 사라졌다. 이 사람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최선이라 믿어본다.
이러한 사례는 1. 모집 단계의 실수 혹은 오류에서 벌어진 채용 실패의 건들이다. 채용 실패는 한 명의 사람을 들이기 위해 들어간 시간과 돈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회사로서 엄청난 손해이며, 같은 맥락에서 입사자(또는 후보자)로서도 엄청난 손해이다.
물론 2. 검증 단계와 최종 3. 채용 단계에서도 많은 실수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모집 단계에서 삐걱거린 인사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채용을 위해서는 초석을 잘 놓아야 하는 법이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채용의 그것과 비교해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우자를 모집하는 단계에서 점검해보지 못한 사항들은 결혼의 성립을 방해하거나,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아래 각 단계를 배우자 채용에 빗대어 이해해 보자.
- 결혼할 결심
가장 먼저, 스스로 결혼을 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마치 회사에서 채용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승인하는 것처럼, 결혼에 대한 신중한 검토 결과 개인적인 결심이 확실해질 때 성공적인 결혼 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 내가 배우자를 채용해야 할지 여부를 잘 모르겠을 때 무작정 배우자를 입사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조급한 마음에 결혼을 서두르거나, 상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그 의견을 좇아 도장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도 나의 마음에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과연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상대를 위해 삶의 일정 부분을 희생할 수 있는가? 앞으로 이 사람만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가?
물론 준비할 것은 마음 말고도 많다. 재정적 준비도 중요하고, 나의 가족이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결심과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배우자를 채용하더라도 후속적인 어려움이 따를 확률이 높다. 결혼에는 많은 기회비용이 든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기회를 소진하기 전,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 내가 원하는 '배우자'에 대해 정의하기
결혼에 대한 결심이 섰다면, 내가 원하는 '배우자'에 대해 정의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과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싶어? 라고 물었을 때, 내가 진정 원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알아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이때 직무기술서 양식을 빌려보자.
직무기술서 (Job Description) 란?
직무기술서는 해당 직무에 대한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문서이다. 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 포함된다.
1. 직무명
2. 주요 업무
3. 자격 요건
4. 근무 조건
내가 배우자를 채용한다고 생각하고, 직무기술서를 작성해 보자. 아래는 내가 작성한 예시이다.
1. 직무명: 도토리의 남편
2. 주요 업무 *배우자가 됨으로써 새롭게 맡게 될 역할에 대해 정의
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 (물리적<감정적)
인생의 큰 선택에 대해 함께 결정 (디테일에 대해서는 서로 믿고 맡김)
가정의 보호자로서 안전 상황 모니터링 및 문제 해결
2세 계획에 따른 사업 확장 시 적극적 육아 참여 및 가정적인 아버지의 역할
양가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운영 (월 1회 내외 모임)
가사 업무 분담
3. 자격 요건 *지원자가 현재 갖추고 있는 자격에 대해 정의
필수조건
경력: 신입 (초혼)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 자
자산을 최소 X원 보유한 자
성격이 다정하고 수용적이며, 책임감 있는 자
여성 편력이 없는 자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자 (범죄 이력이 없는 자)
우대조건
용모가 빼어난 자
요리 가능자
외부 활동을 즐기는 자
갈등 발생 시 당일 해결이 가능한 자
4. 근무 조건 *결혼 후 내가 제공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정의
갈등 최소화로 안정적인 가정환경 제공
인정과 칭찬 무제한 지원
은퇴까지 맞벌이 및 희망하는 수준의 용돈 제공
주 1회 이상 특식 제공
장기근속 포상 등
배우자의 JD를 작성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또한 그 조건을 필수적인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예민한 편이라면, 나의 배우자의 필수 조건이 감정적으로 기복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내가 채찍보다는 당근을 주었을 때 성장하는 편이라면, 칭찬을 잘하는 사람으로 배우자를 찾아보자. 나에게 가족과의 주기적인 만남이 중요하다면, 이 점을 지원자에게도 미리 알려야 한다.
-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배우자를 물색하기
이제 나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알았다면,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여 적합한 후보자를 찾아보자. 내가 채용 중임을 홍보하고 구인을 해본다. 믿을만한 사람을 통해 소개도 받아보고, 오래 알던 지인들도 검토해 본다. 새로운 모임에도 나가본다. 필요하다면 '듀X', '가X'과 같은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집 채널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지원자 풀 확대: 다양한 지원자를 확인하여 포지션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고 가정해 보자. 내 주변에는 체육학과 졸업생으로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수 있다. 이때 다른 업계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소개팅을 한다면 지원자의 풀이 확대되고,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볼 기회가 생긴다.
2. 효율 증대: 각 채널에 맞는 전략적 접근을 통해, 보다 빠른 후보자 모집이 가능하다.
이미 알고 지내던 지인을 검토하는 경우, 그의 배우자 구인 여부를 확인하기 쉽다. 가족에게 소개를 받는 경우, 미리 상대의 가정환경에 대해 확인을 할 수 있다.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한다면, 나이대와 자산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내가 중요 시 여기는 부분을 전략적으로 검토한다면, 운명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황보다는 빠르고 적합하게 후보자를 찾아낼 수 있다.
3. 타겟팅 가능: 특정 채널을 통한다면 내가 원하는 조건을 타겟팅 할 수도 있다.
원하는 직업군이 있다면, 해당 직업군을 조건으로 후보자를 물색하는 방법이 있다. 무척 가정적으로 자란 친구의 오빠를 소개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도 가정에 충실할 확률이 높다.
사랑은 운명적이다. 그렇지만 운명을 만들고 또는 개척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 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다. 물건을 하나 살 때에도 여러 후보군을 비교해 보는데, 하물며 나의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일에 이런 과정을 통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신중하고 체계적인 선택은 사랑에 깊이를 더해주며, 자신과 진정으로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높여준다.
배우자를 모집하는 과정은,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것만큼 신중한 선택을 요구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한 단계별 절차와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결혼도 첫 시작부터 충분한 준비와 판단이 필요하다.
끝.
(후속 편 예고: 이렇게 '모집'한 후보자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