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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Dec 07. 2022

아직도 피아노가 좋은 40대

한결같이 좋아했던 나의 취미, 피아노 연주


나는 5살, 손이 아주 작았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던 곳은 남해군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바다에서 고동을 줍고 흙파며 노는 것이 일상이던 나의 삶에 피아노가 쑥 들어왔다.

어느 날, 우리 마을에 뚝딱뚝딱 교회가 생기더니 교회 피아노 반주를 하시는 분이 학원을 열었다

학원비는 한 달에 만원, 그 당시로도 저렴한 금액이라 부모님은 피아노 학원에 기분 좋게 보내주셨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달려가서 피아노를 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나는 음악 천재도 아니었고, 소질도 없었지만 피아노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했다. 그렇게 9살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9살이 되었을 때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는데 떨어졌다.

엄마는 무척 속상해하셨지만, 나는 아직도 콩쿠르에서 가슴 떨리면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어쩌면 그 순간의 느낌 덕분에 지금까지도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살이 되어 나는 통영으로 전학을 왔다. 통영의 학원비는 5만원이었다.

부모님은 학원비가 너무 비싸다고, 그만 배우는 것이 어떻냐고 하셨다.

 

그래도 나의 피아노 사랑은 멈춰지지 않았다. 계속 머릿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피아노가 그리웠다.

피아노가 그리워서 종이에다 피아노를 그리고 쳤는데, 머릿속에는 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 다니는 친구를 따라가서 피아노에 몰래 손을 슬쩍 대어보곤 했다.

옆집에 사는 친구 집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친구가 집에 없는데도 친구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그 집으로 들어가 수시로 피아노를 쳤다.

결국,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은 5학년이 시작할 때쯤 겨우 피아노를 사주셨다.

드디어, 생긴 내 피아노, 나는 이 피아노를 마음대로 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교대는 다른 대학과 다르게 부전공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음악교육과가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혼자 쳤으니 손 모양도 엉망이었고 안 좋은 습관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악보를 보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아 악보를 보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하농 1번부터 다시 시작했다. 대학 때 공부하느라, 노느라 바빴지만 짬짬이 연습했고, 4학년 때는 베토벤의 비창 전악장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 실력이 쑥쑥 늘고 있을 때, 나는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아파서 대학병원에 오래 다녔다.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이 들어지자 더 이상 내 머릿속에서는 음악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피아노를 잊고 지내다가 둘째가 조금씩 건강해졌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를 다시 배워보기로 했다. 그때 배운 곡들은 취미반이라 재즈곡이 많았는데 클래식보다 훨씬 훨씬 표현해내는 게 어려웠다.

Love affair(2015년)


그리고, 어느 정도 실력을 키운 첫째와 함께 Four Hands로 피아노 연주를 했다.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10살 큰 딸과 함께, 2016)


하지만 아이들은 나와는 달리 피아노를 싫어했다. 아이들이 피아노 배우기를 멈추자, 나도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를 멈췄다. 이제 내 나이가, 피아노 치기에는 많지 않나 하며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는 날이 길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연주를 찾아 듣다가 메나헴 프레슬러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90세가 넘어도 이렇게 연주할 수가 있다는 것에 감동이었고, 나이를 떠나 연주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충분했다. 주름 가득한 손으로 하는 연주에는 깊이가 있었다


맞다.

피아노 연주에는,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데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wOICHfZZE

 

나이 생각 말고, 삶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자.

미래와는 상관없이 이 순간 즐거운 음악을 하자.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직장도 바쁘고, 나는 승진도 하고 싶었다.

우리 딸들은 자라면서 다양한 문제를 만들며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그래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피아노를 쳤다.

다른 이들의 연주를 듣고, 내 연주를 녹음해서 다시 들으면서 행복해졌다.

 

사실 나는 피아노를 친 시간은 길지만 꾸준히 치지 못했다.

혼자 친 시간이 길어 손 모양이 나쁘고 악보 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실력도 부족해서 친구랑 같이 쳐야 그나마 듣기가 좋다.

https://youtu.be/E149kRnl9AA

보이스톡, 터키 행진곡(with 경문, 2021)


나는 앞으로도 피아노를 꾸준히 치려고 한다.

한 학기에 1곡을 연습해서 녹음하는 것을 목표로 소박하게 즐기고 싶다.


예전의 어린 내가 종이 피아노를 치며 머릿속에서 음악을 만들어 냈던 감성도

피아노를 칠 때의 떨림과 설렘도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나에게 피아노는 내 삶을 위로해주는 친구이자, 칭찬해주는 응원이자, 내 삶의 일부이기에

나는 오래오래 피아노와 함께 하고 싶다.

변진섭, 그대 내게 다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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