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자료를 찾으러 어느 날,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 들어갔다가 선생님들이 매주 집회를 열고 있고, 열심히 <아동복지법 개정>, <진상규명이 추모다>라고 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방학 동안 나는 중-고등 특수 음악교과서 집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능력도 안 되는데 괜히 교과서를 쓴다고 했나', '왜 이렇게 나는 아이디어가 없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후배들이, 그리고 동기들이, 선배들이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인디스쿨의 글들을 복습했다.
후배들은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교직을 떠나겠다는 글이 수십건이다.
행복한 교사를 꿈꿨을텐데 현실이 참담했다
내가 몰랐던 상황들도 참 많았다.
그동안 해왔던 검은 점들의 집회 영상들을 다시 보기로 보면서, 선생님들의 발언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아이들도 평범했고, 학부모님들도 좋으신 분들을 만났다.
나는 동료가늪에 빠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나 혼자 꽃밭에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교생 선생님들에게 교실이 꽃밭이라고 했는데, 막상 현장은 외로운 늪이라며 울고 있을 것 같아서 슬펐다.
'좋은 선생님이 되세요'라는 말이 늪속으로 빠지는 그들의 머리를 누르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
무임승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우선 9월 2일 상경하는 버스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것도 늦게 신청한 친구는 탑승할 수 없어서 KTX를 혼자 타고 올라왔다.
나는 빠르게 움직인 덕에 버스 탑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7차 집회 후원을 했다. 운 좋게 후원을 할 수 있었다.
왜 운이 좋다고 하냐면 인디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열정적이 시던지 후원금을 3억을 모았는데 3억이 1시간 만에 모였기 때문이다.
나도 친구가 가르쳐줘서 얼른 후원할수 있었다
늦게 들어온 사람은 후원할 기회도 없을 정도였다.
선생님들의 마음은 이렇게끓어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9월 4일 멈춤에 참여한다는 약속으로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라색으로 변경했다.
내가 이렇게 인디스쿨에서 상황을 파악하며 움직이는 동안 벌써 집회는 7차를 향해가고 있었다.
매 집회는 인디스쿨에서 꾸려진 그때 그때 다른 사람들로 진행되었고, 어떠한 단체의 주관도 없이 순수하게 봉사자들로 꾸려지고 있었다.
이미 함께 부르는 노래도 작곡되어 있었고, 드론팀, 홍보팀 등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입이 떡 벌어졌다.
집회를 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20~30대 교사들이 집회 전문가처럼 척척 진행하고 있었다.
준비 상황을 인디스쿨에서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1주일 만에 저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며칠 만에 800대의 버스를 확보했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도 열대가 넘는 버스가 출발했다.
9월 2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했다.
내가 타는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정확하게 7시가 되기 전 버스가 도착했고,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28인승 버스라
편하게 혼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멀미를 하지 않길, 잠이 오길 바라면서 출발했다.
첫 번째 도착한 휴게소는 '낙동강구미 휴게소'였는데 차에서 내리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화장실 앞의 검은 줄도 정말 길어 나는 화장실 가기를 포기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밥을 먹던 가족들이 "저 검은 옷들은 뭐야? 무슨 일이지? 또 버스가 온다, 또 검은 사람들이야"하며 놀라고 있었다.
좀 쉬었다가 다시 버스에 탑승하는데 <교육권 확보>라고 적힌 버스가 너무 많아서 어느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인지 몰라 한참 찾았다. 다른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동료에게 '어느 휴게소냐'라고 물었는데 혼잡을 피하기 위해 다들 다른 휴게소를 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는 식사를 했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혼밥존'에서 김밥을 먹었다. 식당은 검은 옷으로 가득 찼다. 혼자 있어도 다들 같은 마음으로 상경하고 있기에 든든했다.
서울로 들어가자 차가 너무 많이 막혔다. 여의도에 가까워지자 다들 탄성을 질렀다.
엄청나게 많은 버스, 검은 옷의 물결
온통 검은색이었다.
검은 점하나 찍으러 올라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1시 15분쯤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너무 검은 옷이 많아 정신 차려서 걷지 않으면 같이 온 버스팀을 놓칠까 봐 정말 열심히 걸었다.
나는 새벽 6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고,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늦게 도착한 편이라
kbs 옆 12 구역에 자리가 주어졌다.
아스팔트에 준비해 온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2시에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주어져, 나는 오랜 벗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교때 친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인천ㅡ울산에 살아 자주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집회에서 만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각자 다른 지역에 살았지만 함께 하자,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한마음으로 이 곳에 모였다는게 신기했다.
2시, 집회가 시작되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발언을 들으며, 시낭송을 들으며, 노래를 들으며, 영상을 보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30만의 검은 점들은 정말 질서를 잘 지켰고, 집회에 집중했고, 열심히 외쳤다.
나는 비록 KBS 앞에서 외쳐서 드론에서 찍은 이 사진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30만이 모였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