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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Sep 06. 2023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보내며

9.2 집회, 그리고 9.4 멈춤, 쉽지 않았던 순간들

원래 방학 동안에는 인디스쿨에 잘 들어가지 않다.

그런데 자료를 찾으러 어느 날,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 들어갔다가 선생님들이 매주 집회를 열고 있고, 열심히 <아동복지법 개정>, <진상규명이 추모다>라고 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방학 동안 나는 중-고등 특수 음악교과서 집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능력도 안 되는데 괜히 교과서를 쓴다고 했나', '왜 이렇게 나는 아이디어가 없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후배들이, 그리고 동기들이, 선배들이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인디스쿨의 글들을 복습했다.

후배들은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교직을 떠나겠다는 글이 수십건이다.

행복한 교사를 꿈꿨을텐데 현실이 참담했다

내가 몰랐던 상황들도 참 많았다.

그동안 해왔던 검은 점들의 집회 영상들을 다시 보기로 보면서, 선생님들의 발언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아이들도 평범했고, 학부모님들도 좋으신 분들을 만났다.

나는 동료 늪에 빠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나 혼자 꽃밭에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교생 선생님들에게 교실이 꽃밭이라고 했는데, 막상 현장은 외로운 늪이라며 울고 있을 것 같아서 슬펐다.

'좋은 선생님이 되세요'라는 말이 늪속으로 빠지는 그들의 머리를 누르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




무임승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우선 9월 2일 상경하는 버스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것도 늦게 신청한 친구는 탑승할 수 없어서 KTX를 혼자 타고 올라왔다.

나는 빠르게 움직인 덕에 버스 탑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7차 집회 후원을 했다. 운 좋게 후원을 할 수 있었다.

왜 운이 좋다고 하냐면 인디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열정적이 시던지 후원금을 3억을 모았는데 3억이 1시간 만에 모였기 때문이다.

나도 친구가 가르쳐줘서 얼른 후원할수 있었다

늦게 들어온 사람은 후원할 기회도 없을 정도였다.

선생님들의 마음은 이렇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9월 4일 멈춤에 참여한다는 약속으로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라색으로 변경했다.


내가 이렇게 인디스쿨에서 상황을 파악하며 움직이는 동안 벌써 집회는 7차를 향해가고 있었다.

매 집회는 인디스쿨에서 꾸려진 그때 그때 다른 사람들로 진행되었고, 어떠한 단체의 주관도 없이 순수하게 봉사자들로 꾸려지고 있었다.

이미 함께 부르는 노래도 작곡되어 있었고, 드론팀, 홍보팀 등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입이 떡 벌어졌다.

집회를 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20~30대 교사들이 집회 전문가처럼 척척 진행하고 있었다.


준비 상황을 인디스쿨에서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1주일 만에 저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며칠 만에 800대의 버스를 확보했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도 열대가 넘는 버스가 출발했다.



9월 2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발했다.

내가 타는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정확하게 7시가 되기 전 버스가 도착했고,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28인승 버스라

편하게 혼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멀미를 하지 않길, 잠이 오길 바라면서 출발했다.


첫 번째 도착한 휴게소는 '낙동강구미 휴게소'였는데 차에서 내리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화장실 앞의 검은 줄도 정말 길어 나는 화장실 가기를 포기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밥을 먹던 가족들이 "저 검은 옷들은 뭐야? 무슨 일이지? 또 버스가 온다, 또 검은 사람들이야"하며 놀라고 있었다.


좀 쉬었다가 다시 버스에 탑승하는데 <교육권 확보>라고 적힌 버스가 너무 많아서 어느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인지 몰라 한참 찾았다. 다른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동료에게 '어느 휴게소냐'라고 물었는데 혼잡을 피하기 위해 다들 다른 휴게소를 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는 식사를 했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혼밥존'에서 김밥을 먹었다. 식당은 검은 옷으로 가득 찼다. 혼자 있어도 다들 같은 마음으로 상경하고 있기에 든든했다.



서울로 들어가자 차가 너무 많이 막혔다. 여의도에 가까워지자 다들 탄성을 질렀다.

엄청나게 많은 버스, 검은 옷의 물결

온통 검은색이었다.

검은 점하나 찍으러 올라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1시 15분쯤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너무 검은 옷이 많아 정신 차려서 걷지 않으면 같이 온 버스팀을 놓칠까 봐 정말 열심히 걸었다.

나는 새벽 6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고,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늦게 도착한 편이라

kbs 옆 12 구역에 자리가 주어졌다.

아스팔트에 준비해 온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2시에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주어져, 나는 오랜 벗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교때 친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인천ㅡ울산에 살아 자주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집회에서 만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각자 다른 지역에 살았지만 함께 하자,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한마음으로 이 곳에 모였다는게 신기했다.


2시, 집회가 시작되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발언을 들으며, 시낭송을 들으며, 노래를 들으며, 영상을 보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30만의 검은 점들은 정말 질서를 잘 지켰고, 집회에 집중했고, 열심히 외쳤다.

나는 비록 KBS 앞에서 외쳐서 드론에서 찍은 이 사진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30만이 모였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는 KBS 9시 뉴스 메인을 장식했다.

https://youtu.be/LdHPpDV4U_0?si=7cLWp34Pe0Xvzvvk

KBS 9시 뉴스 9월 2일


그리고 30만이 모였음에도 안전사고도 없고, 질서를 잘 지킨 집회에 대해 칭찬뉴스가 이어졌다.

https://youtu.be/aHzdmozd8PI?si=6LEfDNPzcm34we5T

이틀 후 SBS 뉴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 배터리가 다 소진되어 음악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차에서 잠도 잘 못 자는 나는 6시간을 오롯이 창밖을 보며 버텼다.

그래도 함께 목소리를 냈고, 나도 그 속에 검은 점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집회 인원 추산을 위한 점찍기! 내가 찍을 때 이미 20만이 넘었다



9월 3일


인디스쿨은 연가 병가를 앞두고 심란한 교사들의 글로 서버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리고 교육부의 속셈이 뻔히 보이는 간담회까지 열린다는 소식에 집회 후 뿌듯함이 이어지기 하루도 되지 않아 무기력함 마저 느꼈다. 간담회는 그야말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한 쇼였다.


이주호 장관은 9.4 멈춤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며 교사들을 협박했다.

서이초 교사가 세상을 떠나고 교사들이 참 많이 슬퍼했다.

사실은 우리 주변의 동료들이 다 겪고 있던 일들이었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49재는 우리가 공교육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나서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는데

교육부가 여기에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대응으로 '교사들이 슬프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고'라며 교사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미 재량휴업일로 지정한 학교들이 많았지만, 취소가 줄줄이 이어졌다.

재량휴업일로 진행했으면 방학이 하루 줄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습권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지만 교육부의 태도에 학부모와 함께 결정했던 많은 학교가 재량휴업일 지정을 포기했다.


병가를 미리 쓰면 결재를 안 해준다고 엄포를 놓는 교장, 교감 선생님이 늘었다.

우리 학교 관리자 분들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나는 엄청난 쫄보라서 빨리 9월 4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편하지도 않고 불안했다.

징계를 받을 것 같아서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 동료교사들의 분위기도, 내 교사 친구들의 분위기도 살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자고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9월 4일


아침에 6시 30분,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병가를 올리려고 접속했는데 깜짝 놀랐다.

이미 병가를 올린 인원이 5명이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우리 학교는 6명이 멈춤에 참여했다.

적은 숫자일지 모르나 나는 혼자 참여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정말 감동이었다.


병가를 올리고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 보결담당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뉴스를 보았다.

하루종일 공교육 멈춤 뉴스가 나왔다.

4일 오전 국회 비경제부처 예결위가 열렸는데 이주호 장관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한테는 징계하겠다고 외치던 장관이 아주 착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은 왜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휴업일을 결정하면 징계하겠다고 했는지 질문했다.

https://youtu.be/jsFqGpd3v9M?si=ek9AcllHqv_Os__Q

장관님, 왜 재량휴업일을 막아서 이 혼란을 가져오셨나요?

하루라는 시간동안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워 계속 인디스쿨만 접속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는 9.4 집회를 유튜브 방송으로 보았다. 9.4 집회는 9.2집회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음에도 파급력이 컸다.

종교계도 주목하고 BBC 방송에서도 다루었다.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이 9.4 집회에 참여하는 건데!

내가 쫄보 였던 것 같아 아쉬웠다.

영상으로라도 충분히 그 공간의 분위기가 전해졌지만 말이다. 


https://youtu.be/z33jgxEP5fo?si=MEN3-krMztwwqiF-

교권 침해를 보도하는 BBC뉴스

나는 그리고

각종 방송에서 교사들의 위기에 대해서 특집으로 다룬 영상들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고, 다음날 무사히 출근했다.


https://youtu.be/WgXuZfnwXlY?si=SBy1fwFqQh5UM8Pt

김미경씨가 놀라는 요즘 교권 상황


이주호장관은 다음날 9.4 참여 교사들을 징계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아니... 징계하지 않는 건 당연하고. 협박한 것을 사과해야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동학대법 개정이다.

왜 개정이 필요한지 잘 설명된 글이 있어 가져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교사가 아동학대 고소를 많이 당하는 이유

자발적으로 결성된 인디스쿨 TF팀에서는 아래와 같은 정책요구안을 내어 놓았다.

밤잠을 자지 않고 설문을 분석하여 3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썼다.

나도 이 설문에 참여했는데 문항이 너무 구체적이고 많아서 답변에 2시간이 걸렸다.

10000명이 2시간동안 답한 거대한 분량의 설문을 분석했다니 정말 멋있고 대단한 선생님들이다


9월 4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 한 고비를 넘긴 것처럼 조금은 편해졌다.

이제 국회를 지켜보려고 한다.

부디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들렸길,

그리고 움직여 주길


다시 집회에 나가야 할 상황은 제발 생기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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