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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an 21. 2023

[피자진심 7] 피자가 말했다. 지금 먹지마

부산 이재모 피자



[피자를 좋아해서 피자와 함께한 순간들을 글로 씁니다. 피자 덕후라 글 쓰면서 즐겁습니다]




대학교 4학년, 난 졸업 직전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첫 월급을 탔다. 내 통장에 꽂힌 그럴싸한 돈은 데이트를 할 때 계산서를 집어 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사회에 나와 직접 돈을 벌다니, 알바가 아니라 직장인이 되다니.


월급 턱을 낸다며 간 곳은 부산에서도 유명하기로 이름난 피자집이었다. 바로 부산 이재모 피자.




[ 부산 이재모 피자 ]

-주소 :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 31 중앙아파트상가 2층

-전화번호 : 051-245-1478

-월~토 11:00 ~ 20:30 (일요일은 휴무)

-ljmpizza.fordining.kr

-대표메뉴 : 이재모 치즈크러스트 피자

-예약불가, 포장가능

 (피자 먹으러 부산 갈 정도로 맛있는 피자)

출처 : 이재모 피자 페이스북


부산에서 피자 좀 먹어본 사람은 단연 이재모 피자를 손꼽는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브랜드 피자와는 다르다. 푹신한 도우와 멋 부리지 않는 토핑, 어쩌면 촌스러워 보이는 옛날스타일 피자, 클래식한 맛이 기가 막힌다. 딱 엄마가 만들어준 피자가 떠오른다.


치즈 크러스트는 필수, 오븐 스파게티는 선택이다. 이재모 피자는 치즈도 급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두툼한 빵 위로 가득 올라간 치즈, 그 사이로 알알이 빼곡한 토핑,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피자. 1992년부터 내려오는 피자계의 레전드다.


메뉴를 신중히 고른 후, 피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이야기하다가 그만 일이 벌어졌다.




나는 신입 직장인의 어색한 정장과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공무원 시험 준비하랴 바쁜 시기였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갑자기 취직해 버린 나를 만나러 회사 앞으로 자주 찾아왔다. 6시 퇴근시간이 되면, 회사 앞 전봇대에 기대어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매일같이. 불화의 씨앗이었다.



갑자기 생긴 야근도, 회식도, 늦은 귀가도 영 못마땅한 남자친구는 자주 화를 냈다.


“6시 퇴근시간 지났잖아. 야근 못한다고 해! 내가 기다린다고 하고 퇴근해 버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남자친구와, 눈칫밥 먹는 신입사원 사이에서 자꾸 의견이 부딪혔다.

게다가 내 회사 사수가 남자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직장생활을 이해해주지 않는 남자 친구, 그런 남자 친구에게 서운한 여자 친구. 너무 진부한 모습일까? 말다툼으로 냉랭한 분위기를 가르며 피자가 나왔다. 갓 구운 이재모 피자가 눈앞에 딱!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피자였다.


하지만 피자가 나와도 분위기는 치즈처럼 녹아내리지 않았다. 피자는 냄새를 풍기며 유혹했지만 어쩐지 손을 뻗을 수 없었다. 피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갈등했다. ‘피자를 먹어, 말아, 먹어, 말아... 하...’ 피자 앞에서 108번도 더 고민했지만... 5분 동안 침묵이 흐르고, 남자 친구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회사 그만둬!”

칼같이 말하는 그와 더 이상 마주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난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무려 갓 나온 이재모 피자를 놔두고!


거칠게 이재모 피자 문을 나서다 갑자기 멈칫했다. 오늘은 내가 첫 월급으로 쏘는 날인데? ‘기왕 돈 냈는데 피자를 먹고 나올까? 설마 피자를 먹으면 그만둔다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 십 번도 더 생각했다. 하지만 콧김을 내뿜으며 결론을 냈다.


‘회사를 그만둘 순 없어!’





피자와 함께 남겨진 남자 친구, 피자 가게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서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궁금해하는 이유가 있다. 그날 이후 우린 정말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피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한 회사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날 피자는 ‘진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내 모습은 과거의 내 선택이 만든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의 내 선택이 만든다. 인생을 우왕좌왕하지 않고 살려면, 원칙은 하나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알아야 한다. 때때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기준은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기억 속으로 날 데려가준 이재모 피자, 마음에 새겨진 이별 장소, 그 뒤로 십 년 넘게 이재모 피자를 가지 않았다. 어쩐지 남겨놓은 미안함, 두고 온 피자를 발견하게 될까 봐. 그날의 이재모 피자는 어떤 맛이었을까? 피자가 나왔을 때 못 이기는 척 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출처 : 이재모피자 카카오맵 평가

피자가 가르쳐준 것처럼 내 삶은 내 방식대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내 인생은 순간순간 마다 피자가 있다.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이재모 피자는 아직도 부산에서 유명한 피자 맛집으로 통한다.  


이제 이재모 피자를 먹으러 가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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