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를 너무 사랑해 피자와 함께한 날들을 글로 쓰는 피자덕후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녁때 뭐 해? 포트럭 파티 같이 갈래?”
“파, 파티요?”
갓 입사한 신입 쪼랩인 나에게, 다른 회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같은 업계 사람들이 오는 파티에 너도 가자고.
낯가림이 심한 나. 어렸을 때 고무줄놀이도 집에서 혼자 할 만큼 소심했던 나. 내가 파티를 간다니.
파하하, 선배는 웃었다.
“포트럭 파티 말이야.”
포트럭 파티, 파티 참석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음식을 가져오는 미국식 파티란다. 포트럭 파티가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 선배는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선배는 새로 입사한 나를 업계에 있는 다른 선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소개해 주는 중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 아무거나 괜찮아. 조금씩 가져와서 같이 먹자.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고.”
그렇게 갑자기 파티를 가게 된 나, 무슨 메뉴를 할까 “그래 피자” 나는 피자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피자였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음식도 피자였다. 스물둘, 신입 월급에, 피자 네 박스를 큰맘 먹고 샀다. 퇴근하고 늦어서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파티장소로 들어간 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티 장소는 탁 트인 부산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달맞이 고개였다. 부산업계에서 이름난 크리에이티브 부띠끄 사무실이었다. 여성 파워를 자랑하는 사장님은 업계에서 실력 좋기로 정평이 나신 분이었다.
사무실도 그야말로 크리에이티브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볼 법한 하얀색 벽과 바닥. 투명한 테이블과 의자가 오브제처럼 놓여 있었다. 사무실 중앙에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나선형 계단이 2층으로 이어졌다. 우아한 곡선 계단도 역시 하얀색.
“이 벽이랑 바닥을 하얀색으로 해달라고 하니까 인테리어 하시는 분이 안된다는 거예요. 왜? 더러워진대. 내가 원하는 콘셉트인데 더러워지면 내가 다시 칠할 테니까 해달라고 옥신각신 했지요. 아저씨가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대요”
여사장님은 사무실을 꾸미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녀는 투명한 탁자와 테이블도 비싸게 공수했다고 했다. 올 화이트 콘셉트는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통유리창에 딱이었다.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 순수한 하얀색 인테리어와 투명한 가구, 밤이 되면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조명들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일을 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콘셉트가 명확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설득과 주장으로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번듯하게 연출하신 거다.
사무실 곳곳에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료들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놓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디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다. 크리에이티브 부띠끄는답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사무실 밖에는 외제차가 번듯하게 보였다. 내가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저 모습처럼 될까?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포트럭파티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음식을 세팅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든 나는 같이 간 선배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했다. 샐러드를 사 온 사람, 치킨을 사 온 사람, 과일을 사 온 사람, 오호, 피자를 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피자 박스를 구석에 슬며시 놓았다. 그때 사람들이 내 피자를 탁자 중앙에 착착 세팅했다. 둥글 방석만큼 커다란 피자, 그 위에 색감도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피자 토핑들, 하얀색 치즈는 모든 토핑 색깔을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소심해서 인사도 잘 못하던 나에게 내 피자는 ‘뭐 하니? 너도 빨리 와서 나처럼 자리 잡아!’ 하는 것 같았다.
“어머 피자 맛있네. 누가 사 왔어요?” 방금 내가 부러워하던 여사장님이 피자를 덥석 베어 물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과 얼굴을 트며 통성명을 했다. 업계에서 날린다는 사람들과 테이블 중앙 피자 곁에 둘러앉은 나, 사람들과 인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인맥을 새롭게 만들었다.
피자는 크다. 피자는 둥글다. 누구나 손을 뻗으면 집어 들 수 있는 적당한 거리. 바로 테이블 중심이다. 그럼 피자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두가 조각피자로 같은 맛을 공유한다. 피자를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피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음식이었다
업계에 나의 존재를 알려주고,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그 피자를 기억한다. 피자와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세상에 피자는 어쩌면 그냥 둥근 요리, 하지만 나에겐 테이블 중심에서 사람들을 둘러앉게 만드는 요리다.
“피자 드세요”
지금도 사람들은 피자를 보면 단박에 서로를 부른다. 치즈가 식으니까 어서 와서 함께 먹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