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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Sep 29. 2022

[피자진심 5] 그 피자가 나에게 해준 말은


피자를 좋아해서 피자와 함께한 인생 이야기를 씁니다. 피자 덕후의 초짜 신입시절 이야기



우리 회사 신입사원은 나와 남자 동기 단 둘 뿐이었다. 남자 사원은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신입사원처럼 농담도 잘하고 웃음기 많은 성격이었다. 나는 숫기가 없어서 네네 하면서 말 잘 듣는 평범한 여 사원이었고.



입사 첫날, 점심시간이 되자 선배들이 짜장면을 시켜주셨다. 나는 첫 출근한 회사가 영 어색했다. 긴 생머리를 다소곳이 잡고서, 짜장면을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먹었다. 입가에 묻히지 않으려고 초집중했다.


그런데 너무 먹는데 집중하느라 옆자리에 앉은 대리님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나 짜장면 한 젓가락만 먹어보자.”

맙소사! 선배가 점심시간에 건네는 첫 멘트를 나도 모르게 무시하고 말았던 것. 분위기가 싸 해졌다. 눈치 없는 신입원으로 찍혔다.




출근 2일 차는 11월 11일이었다. 나와 신입 동기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일찍 출근했다. 신입 동기는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9시에 선배들이 출근하자 하하, 오늘 빼빼로 데이 아닙니까” 하며 빼빼로를 꺼내 선배들에게 쭉 돌렸다. 여자 선배들은 깜짝 빼빼로 선물에 활짝 웃었다. 맙소사!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빼빼로 데이, 빈손인 나는 예쁨 받을 눈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 남자 신입사원은 흡연자였다.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러 갈 때마다 꼭 남자 신입사원을 데리고 갔다. 담배를 피우면서 회사 생활하면서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들을 귀띔해 주었다.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선배들과 급속도로 친해지는 남자 신입사원을 보며 심각하게 생각했다.

 나 담배를 배워야 할까 봐..’ 



사회생활은 처음이라 뚝딱거렸지만, 선배들이 일을 시키면 어떻게든 해보려고 버둥거렸다.

선배가 시킨 걸 가져갔을 때, 의외라는 선배의 표정. ? 못할 줄 알았는데?” 출근 후 처음 들었던 그 사소한 멘트와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지 못했어도, 눈치껏 분위기를 맞춰주고 즉각 대령 못했어도, 내게 시키는 일은 내 생각대로 해보려고 애썼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나..




2022년 여수로 여행을 갔다.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버스커 버스커 장범준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흥얼 나오는 여수다.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돌산대교가 반짝반짝 불을 밝혔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여수 밤바다는 아름다웠다.


낭만이 흘러넘치는 포장마차 촌.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 선 포장마차들이 빛무리를 지었다. 이순신 광장에서 하멜 등대까지 이어지는 그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포차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 같은 그 가게들 가운데, ? 피자다 빼꼼 문을 연 피자 가게가 있었다.


포차 사이에 버젓이 자리 잡은 피자가게라니? 불멸의 이순신과 조선시대 하멜이 살았던 여수 바닷가에 근엄하게 자리 잡은 피자가게라니? 그 이름은 바로 ‘조선피자’다.    



[조선피자]

주소 : 전남 여수시 하멜로 78

전화 : 061-686-1012

영업시간 : 15:00 ~

메뉴 : 불닭할라피뇨피자 /파송송불고기피자

김치베이컨피자 /콩가루인절미피자 외





가게 안에 들어서자 인테리어가 개성이 넘친다. 임금님이 선글라스를 낀 벽화? 이순신 장군과 피자 그림? 뜨거운 피자치즈를 쭉 늘어뜨려 맛보는 임금님? 족자에 붓펜으로 써놓은 메뉴판? 옛 교자상 같은 테이블도 어쩐지 정감이 간다.


포차 거리에 단연 눈에 띄는 낡은 명조체 간판이 심상찮더라니.



한국 특유의 맛 섞인 독특한 피자,

치즈가 뜨거울 땐 맥주가 나서 준다

‘파송송 불고기 피자’와 ‘달달 고구마 피자’ 2가지 맛을 다 보고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반반피자]를 시켰다. 맥주 먼저 대령이오. 컵을 잔뜩 얼려 맥주를 콸콸 담아 손잡이부터 짜릿하게 시원하다. 맥주를 먹기 전에 컵을 쥔 손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살얼음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마셔버렸다.



오븐에서 갓 구워 치즈가 흘러내리다 못해 쏟아지는 피자가 나왔다. 두툼한 도우, 뜨끈한 피자는 행복이다. 피자를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쫀득하고 짭조름한 피자 맛이 어우러진다. 더없이 충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맛이지! 여수에 왔다고 해산물만 먹나? 피자 먹고 싶은 사람도 당당히 낭만포차 거리에 피자를 시켜 먹을 수 있다니.




“로마인은 인생을 길에 비유를 많이 했다. 천보에 한 걸음씩 숫자 표시를 세워, 자신이 얼마나 왔는지 1마일마다 돌을 세웠고, 이 돌을 ‘마일스톤’이라고 불렀다. 마일스톤을 보며 인생이 옆길로 새지 않고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마일스톤을 가지면 남과 비교할 필요 없다. 스스로 성공 기준을 세워 달성해나가고 인생의 기쁨을 느낀다. 자기만의 마일스톤을 파악하라


 - 조승연의 ‘비즈니스 인문학’ 중




모두가 다 해물과 소주 포장마차를 부르짖을 때, 홀로 존재감 뽐내는 피자집. 돌문어 삼합과 소주가 어우러져 흥얼거리는 포차 거리 한가운데, 자기만의 맛과 포스를 자랑하는 피자집. ‘조선피자’


못 피우는 담배를 피울까 생각하기보단, 나다움으로 하나 둘 익혀나갔던 사회생활, 일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던 그 신입 동기 대신 나는 내 방식대로 뚜벅뚜벅 십 수년의 세월을 버텼다. 그리고 지금 괴짜 임금님 벽화와 함께 조선피자를 먹는다.



“피자는 나에게

 남들이 말하는 건 잊어버리고,

 나 답게 살라고 가르쳐주었다.”




조선피자 바로 앞바다, 돌산대교는 보석처럼 빛났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여수 해상 케이블카는 별똥별인 것만 같았다. 해안가를 따라 불을 밝힌 낭만포차와 카페들, 그리고 소박한 피자가게. 여수 밤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해운대를 시샘하지 않고, 여수답게.




피자가 들려준 더 많은 이야기, 즐겨보세요


https://brunch.co.kr/@folsy/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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