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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Feb 11. 2023

[피자진심 9] 피자가 몰래 알려준 인간관계 꿀팁

함께 즐겨요!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피자에 꽂혀서 나는 피자를 제일 좋아해’라고 말하곤 했다. 피자 취향은 참 한결같았다. 대학교 입학 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가면 선배들이 물어봤다. “무슨 음식 좋아해?”라고 말하면 나는 “피자요”라고 대답했다.


어딜 가나 피자 좋아한다고 했더니, 별명이 ‘피자소녀’가 되었다. 오래간만에 만나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사람들은 늘 내게 ‘피자 먹으러 갈까?’라고 되물었다.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졌고, 어쩌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피자를 먹으러 갔다.  


피자에 진심인 나는 피자 가게에 들어갈 때부터 들뜬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내 표정을 보는 걸 즐겼다. 무언가 너무 좋아하게 되면 숨길 수 없나 보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옆 피자 테이블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람들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생겼다. 누구나 연예를 처음 시작하면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세히 살핀다.  데이트를 하면 어디를 갈지, 뭘 먹을지를 정한다.

이때 서로 좋아하는 음식과 취향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지는 건 연애 공식이다. 같은 면이 있으면 반갑기도 하고, 다른 면이 있으면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자친구가 “오늘 뭐 먹고 싶어?”라고 물었다. 난 “피자!”라고 말했다. 피자 앞에서 들뜬 모습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째 데이트쯤이었나


피자를 먹으러 가서 남자친구는 피자를 겨우 한 조각만 먹고 말았다. 그리고 피자 가게를 나오면서 남자친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된장찌개 먹고 싶다” ‘응?’ 나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오다가 아차 했다. 피자에 홀려서 신나게 먹다 보니 남자친구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몰랐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는 순수혈통 한식 파였다. 그다지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 편, 심지어 까르보나라 크림파스타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우, 느끼해’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는 거다. 그저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메뉴 하나에도 서로 배려가 필요하다. 이제 상대방이 “뭐 먹으러 갈래요?”라고 물으면 피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꼭 상대방에게 다시 묻는다. 드시고 싶으신 게 있는지. 혹시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좋아하는 건 뭔지,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중 뭘 좋아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아주 살짝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혹시 이 분은 피자를 좋아할까?’


만약 피자가게에 가서 피자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그 짧은 순간에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한다. 피자에 수많은 토핑을 선택할 수 있고,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할 수많은 과정이 있다


새우를 싫어하면 시푸드 피자는 제외다. 고기를 좋아하는 상대방과 함께 가면 스테이크 피자를 권한다. 치즈를 좋아한다면 치즈바이트 추가도 좋다. 푹신한 일반 도우를 좋아하는지, 얇고 바삭거리는 씬 피자를 좋아하는지도 꼼꼼히 묻는다. 피자 위에 파인애플이 올라가는 새콤달콤한 피자는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반드시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그 뒤 머릿속에 기억해 둔다. 이 분은 고기를 좋아하는구나, 이 분은 바삭한 걸 좋아하는구나. 이 분은 해물을 싫어하는구나. 나중에 다른 메뉴를 고를 때 그 취향을 기억해 주면 상대방이 반가워했다. 취향을 알게 되면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





피자는 레귤러 사이즈라도 최소 6조각~8조각이다. 주로  함께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서로의 취향을 배려해 줘야 한다.

광고에 나오는 피자헛의 메인 슬로건도 카피라이터가 이 깊은 뜻을 알고 쓴 카피다.

“함께 즐겨요 피자헛!


자료출처 : 피자헛 TVCF


출처 : 피자헛 TVCF





지금은 남편이 된 그 남자친구. 하지만 부부는 입맛까지 닮나 보다.

 “사실 나 그때 피자랑 까르보나라 안 좋아했어. 그런데 지금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이번 주말 피자 먹으러 가자”


남편은 한식과 양식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나와 맛있는 피자집에 종종 들렀다. 진정 피자 맛에 눈뜬 남편은 이제 나름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면서 입맛을 공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건 행운이다.





이제 피자는 상대방과 내가 마음이 맞을 때만 먹으러 간다, 지금도 내가 워낙 피자를 좋아하니, 사람들은 나를 만나는 날에는 무조건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난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니에요. 저는 어제 피자 먹었어요. 피자 안 먹어도 돼요. 이번엔 드시고 싶은 메뉴로 해요" 사양하면 상대방은 그제야 다른 메뉴를 말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방법도 배운다. 메뉴를 정하며 취향을 알아보고 친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피자. 


피자는 조각을 나누며 배려하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내게 피자는 어쩌면 인생 선생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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