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두 할 수 있어_09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선 러닝크루...
플러팅을 하던말던, 에너지젤을 주고받던 말던... 달리기에만 진심인 모범 어르신은 여차여차 그들 틈에 끼어 마라톤까지 나가게 되었다.
첫 마라톤은 10월 말에 있었던 '아시아투데이 마라톤'.
분위기에 휩쓸려 10K 신청은 해놓았으나 평소 5-7K를 달리던 나는 무슨 배짱인지 연습은 커녕 10K 를 한번도 달려보지도 않고 대회를 맞이하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전날 밤, 긴장 반 걱정 반으로 불면이 시작되고 새벽까지 뒤척이던 나는 결국 마라톤 대신 뒤늦게 <흑백요리사> 를 선택하고 날밤을 새 버렸다.
웃프지도 않은 에피소드에 자괴감과 허무함에 빠져 다짐했다.
한 달 후인 YMCA 마라톤, 두고 보자!
다행히 러닝 클래스에서 배운 자세 교정과 케이던스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약간의 변화와 발전을 느낄 수 있었고 컨디션도 전보다 좋아졌다.
그래도 10K 마라톤은 달리기와 운동을 꽤 해온 내게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크루 내에서 이제 두어 달 뛰기 시작한 젊은 친구들이 막 10K를 뛰어버리니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렇구나!' 했을 뿐이지, 오기나 욕심 같은 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은 뛰어봐야 할 것 같아서 대회를 사흘 앞두고 10K에 도전해보았다.
마지막 2K가 좀 힘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성공...
대회를 나가 본 크루들 사이에서 PB (Personal Best) 를 냈느니, 어쩌니 해도 무엇의 약자인지 관심도 없었다. (안 뛰어봤는데 Best가 어딨나, First라면 모를까)
"기록은 무슨... 완주만 하면 다행이지! 즐기는 거야!"
그러나 막상 대회 당일, 짐을 맡기고 워밍업을 하러 한시간 전에 도착한 광화문의 풍경은 나의 그런 안일한 감상을 잊게 해주었다.
이미 그 시간부터 체온 조절을 위해 우비나 호일을 둘러 쓴 채 웜업 달리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도시의 유령처럼 신기하고 흥미로운 진풍경이었다.
코스는 광화문을 출발해 시청, 숭례문을 거쳐 명동, 청계천 일대를 돌아 종각에서 마무리하는,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훌륭한 것이었다.
풀, 하프, 10K... 순서대로 조를 나눠 출발점인 이순신 장군 옆에 대기했다.
나는 10K C조...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레임이 나를 지배했다.
올림픽도 아니요, 전국체전도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앞둔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
'아, 근데 이 기시감은 뭐지? ' 싶었는데 그건 바로 초등학교 운동회, 유일무이하게 계주 선수(#야, 너도 할 수 있어_01 참조)로 출발선 앞에 섰을 때의 그것으로...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야말로 '어린 아이다운' 순수하고 담백한 그것이었다.
드디어 출발!!!
함께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약간의 경쟁심과 그 보다 더 큰 동질감에 마음이 부풀어왔고 그와 동시에 숨겨둔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뭐시 중한디? 그래!!!
완주가 아니라 기록이다!!!
하지만 인파들에 병목구간까지 생겨 제 속도를 내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다 첫번 째 기회가 온다. 바로 경복궁 업힐 구간!
주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더니 속도들이 쳐지기 시작한다.
제끼고 제끼고 제끼고... 솔직히 묘한 쾌감이 있다.
이제 2K 구간인데 구간을 이탈해 걷거나 배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보인다. (괜히 쫄았네?)
드디어 5K 지점, 급수대를 지난다. '기록을 위해' 달리면서 마신다.
달리면서 마시는 기술은 생전 써먹은 적이 없기에 반은 흘리고 반의 반은 코로 들어가고 나머지로 목을 축인다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로 들어가는 후반 지점, 간만에 워치를 보니 무려 심박수가 170을 넘어버리고...
길가에 세워진 응급차가 내 심장 박동을 더 거세게 만든다.
이게 뭐라고... 달리다 죽을 일은 아니지!!!
다음 마라톤이 '찐기록' 이라며 첫 술에 배 터질 욕심을 버리고 속도를 줄여본다.
을지로를 돌아 반환점... 이제 2K가 조금 더 남았는데 와씨, 역시나 마의 구간이다.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그냥 줄어버린다.
이번엔 사람들이 나를 제끼고 제끼고 제낀다. 에라이, 망했나?
하지만 다리는 쉽사리 말을 듣지 않는다. 서포터들의 응원에 그래도 힘을 내본다.
드디어 피니쉬점이 보인다. 그제야 아쉬움에 약 30m를 앞두고 질주하여 피니쉬라인을 넘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욕과 함성이 절로 나온다.
아쒸! 아!!! 아쒸!!! 아아아아아!!!!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