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네팔_02
19년 만에 다시 찾은 네팔...
떠나기 전,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다.
얼마나 변했을까? 예전의 그 모습은 없겠지?
그런데 도착한 카트만두도, 포카라도 거짓말처럼 그대로였다.
식당이며 숙소며, 상호나 간판 색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마치 세월을 스틸 사진에 잠시 잡아두었다가 풀어놓은 양,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지난 여름, 런던에 한달 다녀오고 그 사이 집 주변이 꽤나 많이 변한 걸 보고 적지 않게 놀랐던 것과 대비가 되었다.
문을 닫은 커피숍이 두 어 개에 새로운 가게를 시작하는 곳들로 시작해 천변의 산책로는 인공 조형물이 더해져 있었다. 고작 한 달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이 곳은 어제처럼 그대로다. 무려 19년의 세월 사이에 말이다.
나는 그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슬펐다.
'mother nature' 라는 말이 맞춤정장처럼 어울리는 이 곳, 회귀 본능을 일으키는 고향 같은 곳이 그대로인 것은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이 곳은 여전히 낙후되었고 이 곳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 대지진으로 인해 인명피해는 물론 경제가 박살이 났고 그나마 지금은 많이 회복된 수준이라 하니...그들의 삶이 얼마나 무력하고 고단할지, 가늠조차 송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방인' 으로서의 '이기심' 은 또 다른 마음이었나보다.
서울에서의 근사한 한 끼 외식비가 평범한 이들에겐 한달 생활비가 될 수도 있는데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물건을 살 때면 혹시라도 '눈탱이' 를 맞지 않을까, 악착 같이 확인하고 밑져야 본전, 깎아 본다.
또한 외국인인 나를 노골적으로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을 순박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끊어내기도 하고 한 어린 아이가 내 빵을 꼬질한 손으로 만지자 나도 모르게 발끈해버린다.
"Don't touch! It's mine." 내 거야, 만지지마!
해석해놓으면 정말 더 가관이다.
그저 호기심 많고 조금 산만할 뿐인 어린 아이인데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네팔의 커피가 꽤 맛 좋다 해서 찾아간 로스터리 카페에서 원두와 함께 드립용 여과지를 값도 묻지 않고 골라놓고 나중에 계산서를 보고 뜨악해버렸다.
한국에서는 3천원이면 살 수 있는데 7천원 가량인 것이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직원에게 "와, 어떻게 한국보다 비싸요? " 며 놀라움 반, 의심 반이 섞인 멘트를 날렸다.
이런 순간 순간마다 이내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째서 네팔은 한국보다 비싸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한국과 네팔, 내가 산 여과지는 모두 수입품으로 유통경로가 네팔이 더 어렵기 떄문에 따져보면 당연한 일!)
한국에서도 아이가 내 빵을 만지면 그렇게 대놓고 화를 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애 아빠가 옆에 있었는데 말이다.
감히, 어떻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 앞에서 난 뼛속까지 우월감에 젖어 있었구나. 그저 '한국' 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운 밖에 없으면서...
주사위를 던져 정해진 것처럼 아무 노력도, 아무 대가도 없이 얻은 것이면서...
오늘부터는 진심으로 그들의 미소와 친절을 닮아가보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