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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Apr 06. 2024

그녀와 왈츠를

 만개한 벚꽃잎이 떨어진다. 무성한 꽃잎 사이로 봄바람이 헤집고 다닌. 분홍색 꽃잎이 바람에 실려 . 휘날리며 내려오는 꽃잎을 바라본다.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 낙화가 낙하 중이다.

    

 꽃잎의 춤은 다양하다. 농염하게 흐느적거리는 룸바를 추기도 하고, 경쾌한 자이브 스텝을 밟으며 내려오는 꽃잎도 있다. 지금 머리 위로 내려오는 꽃잎은 왈츠를 추듯 빙빙 돌고 있다. 봄날, 때아닌 무도회.  

   

 꽃잎의 화려한 춤사위가 몸치인 내게는 부럽. 한때 잠시 춤을 ‘배워볼까?’라는 상상을 했었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 여파 때문이었다. 물론 잠시 지나는 소나기처럼 포기하고 말았다.


 요즘은 사교춤을 스포츠 댄스라 부른다고 한다. 스포츠란 말 덕분인지 춤이 건전한 올림픽 종목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퇴직하고 노년이 되면 다시 도전해도 좋겠다. 건강에 도움 된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턱을 괸 채 상상을 해 본다. 노신사가 되어 어느 낯선 여성과 함께하는 춤을. 살짝 심장이 뛰는 일이다. 문제라면 ‘웬? 할아버지’냐며 상대에게 거부당할 수 있. 게다가 아내로부터  ‘노망’이냐는 힐난도 감수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아내가 같이 배우자고 한다면 아찔한 노릇이. 아무래도 가슴 콩닥거리는 댄스 프로젝트는 화병지중이겠.  

   

 아무튼 춤은 설레는 몸짓이다. 춤은 상대가 있는 동작이기 마련이다. 혼자만의 춤은 그냥 외로운 몸짓에 불과할 것이. 이성(異性)과 춤이 주는 아찔함은 대학 새내기 때 경험했다.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장소가 나이트클럽? 드라마 <서울의 달>에 등장하던 어설픈 제비족과 시장바구니로 얼굴을 가리며 아줌마들이 떠올랐다.   

   

 새내기들을 환영한다는 학과 대표의 인사말이 끝나자 윤수일의 <아파트>가 울려 퍼졌다. 빙글빙글 현란하게 돌아가는 조명에 넋이 빠진 채, 무대에 나갈 염두가 생기지 않았다. 선배들은 마사이 족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대로 나섰. 샌드페블즈의 < 어떻게>가 나올 때는 다들 신내림 받은 무속인들 같았다.  

   

 블루스와 파란 불빛은 앙상블이었. 나는 어느 여자 선배에게 팔목을 잡혔고, 무대로 끌려갔다. 선배의 엄명에 어깨와 손은 잡았으나 정신은 혼미했다. 그때의 기억은 강렬했던지, 블루스 곡이었던 E.L.O<미드 나잇 블루>은 그 시절로 이동시키는 타임머신이. 지금도 이 노래를 듣게 되면 요염한 조명과 선배의 웃음, 어색해하던 새내기 동기 표정이 실루엣으로 소환된다.   

   


 춤이 수행일 수 있음을 버스 안에서 깨달았.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교사불자회 수련회를 마치고 광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수련회를 마친 후련함 때문이었을까. 버스에는 때아닌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  어느 가냘픈 여선생이 불을 지폈다. 그녀는 남다른 불심으로 궂은일을 도맡던 심지(心志) 강한 도반이었다. 우스갯소리도 잘하던 그 여선생은 일행들에게 번뜩이는 화두를 던지는 내공의 소유자였다.      


 버스가 호남에 들어서자 여선생은 이렇게 잠만 잘 거냐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더니 각자 소감과 장기자랑을 하잖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소감과 노래를 불렀는데, 어느 교감 선생이 혼신의 힘으로 노래한 <옥경이>가 불씨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몇몇이 따라 부르더니 좁은 통로 가득 흥이 번지고 말았다.    

 이런 곤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금지되어 있는 버스 안에서의 춤이라니. 하지만 버스 기사도 불자인 탓인지 모른 체하는 분위기였다. 음주 없는 춤판이라. 몸치요, 숫기가 없는 내게는 화탕지옥이 열린 셈이었다. 분위기를 독려하던 그 여선생이 던진 강렬한 한마디. “자신이라는 상()을 던져요, 에고를 벗어요. 춤을 춰야 부처가 돼요.” 나도 에고를 따돌리고 어설프게 어깨를 들썩였다.


 현대무용가 홍신자 씨는 춤으로 수행의 일가를 이룬 구도자다. 나는 그녀의 자서전 <자유를 위한 변명>을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다. 오쇼의 한국인 첫 제자, 세계적인 아방가르드 무용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녀의 귀국 현대무용 제례의 충격적인 공연은 장안의 화제였다. 그녀의 수행담은 내 영혼의 불쏘시개였다.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영적 인물이었다.     

     

 마침내 홍신자 씨를 만났다. 대구에서 열린 생명평화결사 축제 때였다. 프로그램에서 적혀있는 '홍신자'라는 이름은 들뜨기에 충분했다. 행사 이틀째 날. 드디어 보라색 색안경과 알록달록 강렬한 옷차림의 홍신자 씨가 제자와 함께 나타났다. 그날 참가자들은 홍신자 씨의 지시에 따라 남다른 목과 팔다리를 소유한 제자의 춤 동작을 따라 했다. 나는 춤이 끝나자 홍신자 씨에게 부리나케 달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과연 나는 춤을 배울 수 있을까? 물론 삼바나 자이브, 차차와 같은 라틴댄스를 시도했다가는 허리가 요절날 것이다. 어쩌면 '왈츠'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미소 천사 오드리 헵번도 <나타샤 왈츠>에 맞춰 왈츠를 추지 않았던가. 퇴직하면 왈츠를 가르쳐 주는 곳을 알아봐야지.   

  

 왈츠의 상대는 누굴? 오드리 헵번 같은 여성은 비현실적일 것이고. 영문 모를 할머니를 만나기보다는 차라리 아내가 무난하겠다. 이제는 인생의 전우요, 자매인 그녀와 손을 잡고 왈츠를 우아하게 춘다면... 혹시 알겠는가? 설레는 청춘의 봄바람이 다시 불어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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