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로의 <실크로드> OST에 푹 빠졌었던시절이있었다.지금은우주에 먼저 가 있는 친구 치프리아노와 함께. 신비로운 신시사이저의 음향은 우리를 그 옛날 둔황과 고비 사막, 전설 같은 티베트과 인도로 이끌었다. '카라반의 행렬'이 흐를 때면낙타를 타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던 행상을 떠올렸다. 몽환적인 기타로의 선율을 타고서 실크로드를 거닐곤 했다.
정년퇴직은시원섭섭한 노동 해방의 순간이겠지. 마지막 출근날, 책상과 서랍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든 이들과 덕담을 나눈 뒤 정문을 나설 때면 “얏호! 해방이다.” 만세를 외치리라. 물론알고 있다. 노년의 빈곤을 피해서다시금 노동의 현장을 찾아 나서야 함을. 하지만 일단 퇴임 다음날 무조건떠나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 카피처럼 대륙의 시안과서역 실크로드의 기착지 둔황으로 달려가련다.
실크로드를 마음에 품게 된 것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은 후였다. 아나톨리반도에서 시작한 작가의 걸음은 중앙아시아 평원과 파미르를 지나 투르판과 둔황을 거쳐 시안에서 멈췄다. 그가 걸었던 거리는 12,000km, 장장 3년의 여정이었다. 그 고단한 길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초원과 강줄기와 사막을 건너면서 대자연과 어떤 속삭임을 나누었을까. 나는 추억의 NHK 실크로드 다큐를 다시 보면서 그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당나라 구법승(求法僧)들은 목숨을 걸고 둔황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 천축으로 들어갔다. 달마와 현장, 구마라습이 걸었던 길이다. 구법의 길에서 세상을 등진 이들이 한둘이랴. 그들에게 실크로드는 부처의 길이자 수행의 절정이다. 구법승 가운데는 신라인 혜초가 있다. 밀교 승려인 그는 스승 금강지의 권유에 따라바닷길을 이용해서 천축국 인도로 향했고, 귀로에는 실크로드를 통하여 당나라로 돌아왔다. 723년에 떠났고 727년에 돌아왔다고 그의 기록물『왕오천축국전』에 적혀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 묻혀있다가 도사 왕원록을 거쳐 프랑스 탐험가 페리오 손으로 들어갔다. 현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책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세계 4대 기행문이라 평가받는다. 혜초가 걸었던 길은 명주, 광저우, 뱅골만, 쿠시가라, 나시크. 잘랑 다라, 간다라, 파사, 나사푸르, 쿠차, 둔황, 장안으로 이어지는 아득한 공간이었다. 그것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 이란, 중앙아시아, 티베트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의 횡단이다.
총 227행인『왕오천축국전』에는 혜초의 심경을 짐작케 하는 몇 편의 한시가 전한다. 특히 <서역으로 들어가는 한나라 사신을 만나 간단히 운을 취해 짓다. 逢漢使入蕃略題四韻取辭>는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이란 땅 파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목. 산맥은 하늘처럼 높았고 땡볕은 대지를 불태우고 설산의 눈보라는 칼날 같았으리라. 등산화나 두터운 침낭이 만무할 터. 다음 날의 생사를 기약 못할 험로였을 것이다. 눈표범과 늑대, 산개의 울음은 얼마나 무서웠을꼬.
오직 부처만을 염하며 걸음을 옮기던 고단한 혜초. 하루는 길을 서역으로 가고 있는 당나라 사신 일행과 마주쳤다. 서역 땅을 향하는 사신 일행도, 중국을 향해 가고 있는 혜초도 뜻하지 않은 상봉에 놀랐으리라. 서로 탄식하면서안전 행로만 기원한다. 다시금 멀어지는 사신 일행을 뒤로한 채 혜초는 홀로 가야 할 막막함에 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서역 전초기지 안서도호부까지, 또 그곳에서 장안, 아닌 고국 계림까지는 얼마련가.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이 숱한 악귀들을 물리치며 걸었던 비단길. 혜초에게도 마구니들은 맹렬하게 덤볐으리라. 밀려드는 허기와 다리 통증. 추위와 열사의 혼미, 언어불통이 주는 두려움도 힘들었겠지만그보다도압도하는 외로움과슬며시 일던 속세에 대한 미련은 아니었을까?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하느냐고 물었다. 혜초의 수행과 깨달음은 실크로드가 부여한 절대 고독 속에서 단단하게 다져졌으리라. 신라인 혜초는 780년에세수 85세로 중국 오대산에서 입적했다. 어쩌면 혜초의 진짜 삶은 실크로드 길에 있었으니, 그남은생애는그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청마 유치환의 '생명의 서'를 읆어본다. 작품의 화자가 혜초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겠다. 실크로드를 거닐며 존재의 실체를 대면하고자 했던 구법승 혜초의 심경이 헤아려진다.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아무것도 없이 적막함)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