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는 두 권의 책과 함께 보냈다. 정수일 교수의 『시대인 소명의 길을 따르다』와 『실크로드 문명 기행』라는 책이다. 혹시90년대 후반쯤 회자되었던 무함마드 깐수란 이름을기억하는가. 1996년 국정원에 의해 체포된 남파공작원 깐수,그가 정수일 교수다.
당시 사진에 등장한 깐수는 콧수염을 하고 있었다. 아랍인과 동아시아인의 외모가 교묘하게 뒤섞인 야릇한 얼굴. 하지만 그는 정수일, 우리 핏줄이었다.또한 국내 대학의 명성 높은 사학과 교수였다. 십여 년간 그는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했다. 그의 위장술은 빈틈이 없어서 심지어잠꼬대도 아랍어로 했다고한다.
정수일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얼마 뒤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이 그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다는 풍문이돌았다. 간첩이라면 학을 떠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결국 그는 몇 해 뒤출감하였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가 4년여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니. 이쯤 되면 누구나 그에 대하여 호기심이 일지않겠는가?
감형 사유는 그의 아랍학과 실크로드학에 대한 출중한 성과와 미미한 간첩 활동 때문이라 했다. 보수언론 조선일보까지 그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했다고 하니 놀라운 깐수씨였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뜻을 담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라는 정수일의 옥중서신이세상에나왔다.
정수일의 인생경로는 흥미롭다. 1934년 중국 지린성 엔벤 출생. 조선족 최초의 베이징대 입학과 이집트 유학. 모로코 주재 중국 외교관. 북한으로 귀환 후 평양 외국어대학 교수. 1984년 남파간첩으로 국내 잠입, 무함마드 깐수로 국적 세탁. 단국대 박사 취득과 조교수 부임. 1996년 간첩 행위 발각. 2000년 출소 후, 국내 실크로드 학문의 일인자로서 수많은 저서와 강연. 수감 중 이븐바투타의 여행기 원전 번역 완료. 무려 12개국의 언어 구사 가능. 남과 북에서가정을 이루었음. 실로현기증 나는 인생사다.
십여 년 전,어느 독립서점에서그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좁은 공간임에도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그날의 주제는 유라시아와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류. 두 시간 넘도록 정수일 씨는 차분하게 청중들을 유라시아로 안내했다. 저토록 해박하고 선한 인물이 간첩? 007 제임스 본드처럼 중국과 아랍 그리고 남북을 종횡무진 했다고?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이 그의 구명을 위해 탄원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에는분단의 경계인으로서 그의 참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책을 읽다가 불현듯서역을개척한한무제 때 장건과 어딘가 닮아 보였다.그것은 이천 년의 시공을 넘어선우보천리. 묵묵한 삶이었으니, 느리지만 쉼 없이 걸었던 소명의 길이었다.
고대 중국 가장 큰 후환은 흉노였다. 한무제는 흉노를 함께 대적할 월지국 사신으로 장건을 파견한다. 하지만 흉노에게 발각되어 십여 년 동안 포로가되고만다. 흉노왕 선우는 결혼까지 주선하면서 그를 회유했음에도기여코 탈출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있는 월지를 찾아간다. 고생 끝에 도착했건만 월지와의 동맹은 결렬되고별 수 없이귀환길에 나선다. 불운한 장건은 또다시 흉노에게 생포되었으나 이번에는 운 좋게 흉노족 아내까지 데리고 탈출하여 한나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다. 실로 13년 만의 귀국이었다.
그의 귀환에 한무제를 포함한 신하들이 눈물을 흘리면 그간의 노고에 칭송했다고 한다. 한편 귀국 후 그가 올린 보고서는 서역 원정의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그가 소명 완수를 위해 넘나들었던 천산북로와 천산남로 그리고 칭하이 성으로 이어진 길은 유라시아 횡단 루트, 실크로드였다. 그 길을 따라 반초, 곽거병,고구려 출신 고선지가 서역 원정을 떠났으며, 현장, 혜초가 천축으로 떠났다.
정수일과 장건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시대의 사명에 모든 생을 걸었다. 누구나 한 번은 세상에 쓰임을 받는 날이 있다. 내 경우에도 오십 초반 무렵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소명으로 알고 동분서주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허한 웃음만 나오지만, 당시 노심초사했던 내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란 문장을 생각해 본다.‘소걸음은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 천 리를 가고, 말은 뛰어 속히 가는 것 같지만 멀리 못 가서 지쳐버린다’는 의미다. 누구에게나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몫이기도 하다. 정수일은 옥중서신에서 그 몫을 우보천리에 비유했다. 이제이순의 길목으로 들어가는 나의 계절에 필요한 말인듯싶다.
카프카는 조급함과 게으름이 죄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둘사이에 살 길이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 길은 우보천리.소의 걸음처럼 느릴지라도 멈춤 없는 길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주역인 카라반의 걸음 또한우보천리였다.이순의행로도 이와같다면큰 허물을 면할 것 같다. 하늘이 내게 손짓할 때까지 그렇게 걸어보련다. 소처럼느리게 멈춤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