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과거 행적이 문제가 있음에도 문학적 성취가 돋보인 작가들이 그렇다. 미당 서정주는 일제 부역자라는 오점이 있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양하는 시를 썼으니 시인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귀기 서린 시를 만나게 되면 천부적인 언어 감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설가 이문열도 그런 경우다. 80년대 청춘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터의 연가』 등. 일련의 발표작들은 고답적인 문체와뛰어난 서사성 그리고 격조 있는 문제의식으로 한 시대를 빛냈다. 훗날 홍위병 논란,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한시절 빛나던 그의 필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80년대 이문열의 팬이었던 나 또한 그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실망감으로 어리둥절했다. 어느새 그는자신의 작품『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제목처럼 일그러진 영웅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독자에 대한 배반이었으니그의 작품들과점점 멀어졌다. 그저 보수정당의 공천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그의 행적을 덤덤하게 바라 볼밖에.
그렇게사라졌던 그의 작품들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얼마 전이었다. 최근에 나온 몇 권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그의 작품이 생각났다. 요즘 그와 같은 이야기꾼을 보기가 어려운 까닭이었다. 며칠 후 그의 작품 중에서 접하지 못했던『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와 『시인』을 읽게 되었다. 과연 그의 문체는 격이 남달랐고 구성은 탄탄했다. 내친김에 그의 인기작 가운데 첫 손으로 꼽는『젊은 날의 초상』를 묵은 책들 사이에서 꺼내 들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젊은 날의 초상』에 읽다 보니 절로 80년대의 캠퍼스 시절이 소환되었다.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로 이어지는 3부작이 한 편의 영화처럼 주르륵 펼쳐졌다. 『젊은 날의 초상』에는 청춘의 절망, 좌절, 갈등, 고뇌, 방황과 같은 단어들이 추억으로 깔려있다. 그것은 또 다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아브락사스요. 『지와 사랑』에서의 방황하는 나르치스였다.
이문열의 젊은 날은 월북한 아버지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그의 어머니는 살아남기 위하여 남편 사진들을 모두 소각해 버렸다고 한다. 작가는 아비의 얼굴도 모르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영웅시대』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는 진보 진영과 앙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당시 연좌제에 묶여 좌절했던 그의 번뇌가『젊은 날의 초상』속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젊은 날의 초상』을 만났던 때는 스무 살 초반 언저리였으리라. 그의 작품은 내 청춘의 은총이었다. 책 속으로 빠져들수록 어설픈 나의 대학 생활과 위선적인 내 청춘이 부끄러웠다. 실로 40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희미한 시간들이 소환되었다. 80년 초중반 낭만적인 벗들이 주위에 있었다. 시인을 꿈꾸던 조 형과 다방 DJ로 유리방에서 내게 LP판을 흔들던 배 형. 최루탄과 휴강으로 불안했던 캠퍼스를 같이 보냈던 국문과 벗들. 그리고 내 젊음의 영롱한 진주 W.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초상이 훅하니 밀려왔다.
이문열 문학에 의혹의 시선을 던진 것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부터였다. 『젊은 날의 초상』에 이어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레터의 연가』로 이어지던 그의 작품에 얼마나 환호했던가. 강수연 주연의 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때부터 작가의 필력이 전과 달라짐을 느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은 실망스러웠지만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천하의 대문호라 하더라도 매번 명작을 쓰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후속작『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그러한 기대를 꺾는 찬물이었다. 이건 뭐야? 책값이 아까웠다. 설탕으로 버무려진 탕후루 같았다. 그리곤 깨달았다. 그의 작품들과 손절해야 함을.
물론 그 후로도 관성적으로 『선택』과 같은 그의 발표작을 읽어보았으나 감흥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들을 반품하겠다는 논란과 더불어 ‘홍위병’ 운운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그나마 남아있던 미련마저 버리게 했다.보수정당의 공천위원 명단에 오른 작가의 명단을 볼 때면 회한마저 들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을 비난할 뜻은 없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같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단지 한때 내 청춘을 꾸며주었던 그의 이야기들이 안타까웠다.
나 역시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보수화 되어가는지 홍위병이란 말을 내뱉었던 그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다만 그를 가리켜 보수의 어른이라고 하니, 제대로 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혹여 윤석렬 정부가 틀린 것이 무어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설마 그 정도의 사리판단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우리 청춘 시대의 이문열이 아니던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그의 모든 것이 화재로 사라졌다는 영상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이유불명의 화재로 그의 <광산문우> 다섯 채가 잿더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애지중지 가꾸었던 모든 것이 사라진 폐허에서 서성대던 칠순 작가의 굽은 등이 우울해 보였다.
“이문열 작가님. 저는 아직껏 당신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지라도 작가님의 문학 세계를 잃는 것이 마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모쪼록 화마의 재앙을 이겨내시고 다시금 늙어가는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우리 곁으로 오시길 소망합니다.”
-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되어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의 의지를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요.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출발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