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뭐 해 먹고살지?
여름이다.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피어올랐던 봄은 흩어지며 날리는 꽃잎처럼 한순간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 게 아닐까 싶게 찬바람이 일더니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서서히 찾아온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듯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여름. 요즘 부쩍 여름냄새가 난다. 뜨거운 공기 속에.
무더운 여름엔 요리하는 게 참 곤혹스럽다. 요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게 되는 시기. 그래서 여름엔 대체로 열을 거의 쓰지 않는 요리를 선호하게 된다. 유부초밥, 김밥, 냉면, 메밀소바, 콩국수, 샐러드, 샌드위치, 비빔밥 등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 사실 여름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편이지만 여름엔 식탁이 좀 더 심플해진다.
가짓수는 적어도 다채로운 빛깔만으로도 이미 배부른 여름의 식탁. 여름의 단골 채소는 아무래도 당근과 오이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매력인 채소. 당근은 샐러드 형태인 '라페'로 만들어서도 많이 즐기는 채소이지만 나는 그냥 소금만 살짝 버무려서 절여먹는다. 양배추도 채 썰어서 소스 없이 즐긴다. 이렇게 채소 본연의 맛을 즐기면 몸의 독소가 해독되는 기분이 들어서 배불리 먹어도 가볍다.
방울토마토는 여름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간식이다. 가득 씻어서 체망이 있는 스텐밧드에 넣어서 입이 심심하거나 시원한 무언가가 먹고 싶을 때마다 한 줌씩 꺼내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껍질이 톡톡 터지면서 입안 가득 퍼지는 싱그러운 맛! 여름에 먹는 재료들은 식감이 중요하다. 식감과 맛과 향이 모두 충족되는 몇 없는 채소 중에 하나. 아무리 많이 먹어도 칼로리 부담도 없고, 요즘엔 가격 부담도 없어서 한 상자씩 두고 먹는다. 겨울철의 귤처럼.
당근, 방울토마토, 오이와 더불어 구운 계란도 자주 먹는 편인데, 일일이 삶는 것조차 버겁고 귀찮을 때가 많아서 구운 계란을 한판씩 사다 놓고 먹는다. 러닝 후 가볍게 영양분을 보충하기도 편하고, 채소만 가득한 식단에 단백질을 채워줄 수 있어서 편하다. 여기에 닭가슴살도 더해주면 그야말로 완벽한 식단.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는데, 몸에 좋다니. 내가 샐러드를 좋아하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닌데 먹을수록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채소들. 신선한 채소들을 즐기다 보면 내 몸도 신선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내 몸은 내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몸을 원한다면 당연히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한다. 좋은 차에 좋은 기름을 쓰듯이 말이다. 입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지 계속 먹다 보면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먹는 행위가 즐거워진다.
잘 알고 있지만! 오늘 점심은 햄버거다. 콜라대신 생수와 감튀대신 코울슬로 샐러드를 선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