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만나러 가는 길,

IN SLOVAKIA

by Jane Anne


이번 여행의 최대 목적은 '앤디 워홀'(1928~1987)을 보러 가는 거였다. 슬로바키아에 <앤디 워홀 박물관> 이 있다는 얘기를 정말이도 우연히 지나가다 듣게 되었다.

유럽의 부활절은 날씨가 좀 이른 감이 있다. 우리는 그 기간에 여행을 한다. 하지만 겨울이 다 지나가지는 않았다. 진눈깨비를 동반한, 살을 에며 파고드는 바람은 오히려 한겨울보다도 한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작년의 부활절(2019.04.21)은 몇 년 만에 날씨가 좋았다. 봄은 완연했고, 우리는 슬로바키아의 두 번째 도시, 코시체를 연계해 '앤디 워홀', 그를 보러 가기로 했다.

슬로바키아는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의 면적이다. 수도는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통과하는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슬로바키아의 수도(브라티슬라바)와 제2의 도시(코시체)는 동서로 떨어져 있다. 그곳에 가려면 약 5시간 40분이 걸리고, 아직도 연결된 고속도로가 없다. 우리는 거기서도 약 1시간 50여분을 더 가야만 한다.

동쪽으로 향해가는 차 안에서, 봄볕은 다소 따가웠다.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작은 언덕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곳은 이미 정돈된 초록색으로 농기계의 손길이 거쳐가 있었다. 곳곳의 들판에는 예수상들이 있고, 교회의 첨탑은 뾰족하지가 않다. 이 쪽의 끝으로 가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나온다. 좁은 도로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마을로 접어들었다 하며 꼬불꼬불하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연신 꾸벅꾸벅 졸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쿵쿵 머리를 박고 있다. 가는 길은 점점 막다른 곳으로 가는 느낌인데, <앤디 워홀 박물관>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맞게 가고 있나?'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었지만, 그의 부모들은 슬로바키아의 동북부 지역인 미코바(Miková)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주한 가난한 광부였다. 우연히 그 지역의 미술가가 그때까지도 미코바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앤디 워홀의 어머니의 여동생에게서 가족사진과 편지들을 건네받고, 미국에 있는 그의 형에게서 뿌리를 확인하게 되었다.


마침내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의 머리는 이제야 안정적으로 멈춰있다. 박물관 맞은편 언덕에는 러시아 르네상스 양식의 청동색 둥근 첨탑과 하얀색 외관의 슬라브 사원이 있었다. 1949년, 세계 1,2차 대전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 한다.

( Orthodox Church of the Holy Spirit )


동네에는 집시애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게 보였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발전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앤디 워홀에게는 그때의 시대적인 배경이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의 부모가 이 곳에서 계속 생활했다면, 그가 팝아트의 대가가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이젤과 물감을 챙기고 마른 빵을 주섬주섬 넣은 가방을 메고 온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때로는 매서운 바람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는 '팩토리'를 지어놓고서 슈퍼에서 파는 흔하디 흔한 통조림 캔을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출력해 고급스러운 조명 아래 걸어두었다.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인의 이미지를 가져와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작품으로 찍어냈다. 대중예술(Popular Art), 팝아트였다.


(이미지 참조 : 네이버)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듯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이질감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인상은 다소 투박했으나, 미술관의 문턱을 넘는 일을 수월하게 했다.
그를 보기 위한 누군가는, 이 먼길을 와야만 했다. 이 박물관이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도나우 강가나 올드타운의 운치 있는 건물에 있었다면 또는 가까운 빈의 고풍스러운 옛 건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우아한 대리석 바닥들을 거닐며 볼 생각에 폼을 잡았을 것이다. 곁가지를 걷어내고 순수,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나는 가졌는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본질인지, 무엇이 허황인지?

1991년, 앤디 워홀의 박물관(Andy Warhol Museum of Modern Art)은 그의 부모의 고향, 미코바와 가까운 매질라보르체( Medzilaborce )에 문을 열었다. 미국에 있는 그의 두 형과 뉴욕에 있는 앤디 워홀 재단 대표, 슬로바키아 문화부 그리고 지역의 미술가가 주축이 되었다. 지금은 그 지역 소속으로 바뀌었다.
이 곳에서는 160여 점의 드로잉과 실크스크린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며 가족들의 사진과 편지 그리고 그의 개인 소지품인 카메라, 선글라스, 카세트 플레이어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두 번째 미술관이 그가 태어난 도시, 미국의 피츠버그(The Andy Warhol Museum)에 세워졌다. 단일 예술가로서는 가장 광범위하고 북미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라고 하니, 아마 작은 마을의 오래된 건물에 세워진 그의 첫 번째 박물관 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대중적인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창작품으로 만들어낸 그의 현대적인 감각과 미술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어우러졌다. 관람을 마치고 잘 찍지 않던 셀카를 찍는 나의 얼굴은 환했다.

다시 우리는 몇 시간을 국도로 따라 돌아가야만 한다. 돌아오는 길은 앤디 워홀을 만나러 가는 길과 똑같다. 이제는 헤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산속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꽃나무는 여전히 좋다.
슬로바키아에는 성들이 참 많다. 마을과 강이 내려다 보이는 비탈진 산기슭에 가파르게 세워진 성들을 스치듯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넓은 평야 위에 우뚝 서 있는 성의 모습에 매료되기도 한다.

( Orava Castle )
( Spiš Castle )

저 멀리 보이는 타트라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은 기상 좋게도 하얀 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뚝 서 있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 앤디 워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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