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선물할 기회가 종종 있다.
애들 과외선생님은 아주 귀한 존재이다. 아이들이 영어가 아닌 나도 모르는 언어를 익혀야 할 때 과외선생님을 구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리고 한번 구하고 나서도 지속하기도 어렵다. 선생님이 더 나은 직장을 구하거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돈을 주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나는 '을'의 입장이 된다. 그 선생님에게는 이 곳의 최대 명절인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 정성껏 선물한다.
지금은 학교에 다니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도 나는 선물을 했다. 이 곳 사람들은 개학하는 첫날 그리고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꽃 한 송이나 작은 초콜릿을 선물한다. 돈의 가치보다는 작은 것을 주면서 정성을 표시한다. 나도 튀지 않으려 작은 것을 하려 하나, 초콜릿은 조금 더 크고 비싼 것을 주려고 한다. 말이 서툰 나의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그들은 떠나가면서 내게 그들의 물건을 주고 간다.
나는 일상적인 물건이나 현금 또는 이곳의 기념품 등을 사준다. 여행지에서는 기념품을 쉽게 사면서, 막상 낯선 곳에서 오래 살아도 이 곳의 기념품들은 없는 경우가 많다. 몇몇 소중한 친구들은 내게 그들의 쓰던 물건이 아닌 선물을 안겨주고 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면서 그들을 종종 떠올린다.
한국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도 선물을 산다. 나의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시댁 가족들을 위해서다. 직계 가족의 배우자를 제외하고 조카들을 빼도 족히 열명은 된다. 근처 나라들을 주말마다 간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뭘 사고, 폴란드는 뭐가 유명하니 그곳의 쇼핑몰도 가 보고, 또 다음 주는 체코로도 넘어간다. 계획은 거창했으나, 막상 사서 모아 보면 소소한 것들이다. 개수가 많으니 부피만 크다.
한국에서 올 때도 선물을 산다.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 학교 선생님들, 나의 현지 친구들 그리고 한국 친구들을 위해서다. 적은 금액이지만 한국적이고 품질이 좋은 걸 살려고 한다. 나의 한국 친구들에게는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이 곳에서는 귀하디 귀한 학용품이나 머리방울 또는 먹거리들을 사 온다.
오늘 책장에 꽂힌 책 중에서 한 권을 꺼내 읽어보았다. 같이 있을 때는 안 보다가 이제야 자세히 보니 그 친구가 좋은 책을 주고 간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떠나간 그들도 내가 준 선물을 보며, 가끔 내 생각을 좋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줘서 기쁜 게 선물이고, 상대방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선물하는 사람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나쁜 마음이 있다.
서운한 마음이다.
내가 줘서 행복한 마음과 내가 아무것도 안 받아도 괜찮은 맘, 그 적정한 수준을 지켜야 선물을 주고 나서의 내 마음도 내가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속상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갖고 싶었는데...
그래서 나는 가끔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 더는 체형의 변화가 없으니 '의'에 대한 소비가 줄었다. 그 돈으로 다른 것들을 산다.
날 위해 꽃을 산다. 예쁜 커피잔이나 수동 원두분쇄기를 산다. 그리고 사고 싶었던 포근한 색상의 소파 덮개나 쿠션을 산다. 작은 거지만, 내가 행복해진다.
내 선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주는 기쁨도 받는 즐거움도 몽땅 내 차지다.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는 조금 주고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더 많이 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