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간에서도 나는 나이다.

by Jane Anne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이에요?" 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선뜻 얘기할 수가 없다.
"초록색도 좋아하고, 노란색도 좋아하고, 검은색도 좋아합니다. 아니, 거의 모든 색깔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한 4일을 집에 있었나? 싶다. 날씨가 춥지 않다.
이상기온으로 눈이 아닌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집이 아니면 쇼핑몰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차장의 차들은 갈 곳을 잃고 모두 정해진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집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나?
봉쇄령도 내려졌고, 24일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연휴가 오늘로 3일째이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아직 하루 더 있다가 월요일부터 필수 업종만 다시 문을 열 것이다.
멀리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자동차는 전만큼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유류비는 평상시였다면 부족했을 텐데, 요즘은 너도, 나도 남아서 서로에게 갖다 쓰라고 해도 모두가 사양한다.

집에서 편히 쉬던 다리에 힘을 주고, 어색한 겉옷을 걸쳐 입었다. 며칠 동안 잠들어 있던 신발을 꺼내 신고, 드디어 우리 집 대문이 세상 밖을 향해 열렸다.
집 뒤, 주택가를 크게 돌아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산과 연결된 작은 놀이터가 나온다. 놀이터를 지나 여러 갈래로 난 산길을 걸으면 여기저기 다른 동네로 이끌어 준다.
도로는 비어 있고, 옆으로 난 인도에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사람들은 원시의 시대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 걷고 있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힘주어서.
우리는 느긋하다.
집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갈 필요가 없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을 시간 개념도 잊어버린 채, 여유롭게 걷는다.

걷는 게 더 익숙해진 요즘,
예전이면 차로 재빠르게 지나치고 말았을,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던 장소들을, 우리는 찬찬히 들여다 보고, 좀 더 오래 머물고자 한다.
별 볼 것 없는 장소라며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서둘러 붐비던 곳으로 다시 이동하던 우리들은 이제 사람이 많으면 주저하게 된다.
조용하고, 이름 없는 장소의 아름다움을 찾게 되었다. 마치, 이 사람, 저 사람을 눈으로 좇으며 '부러움'과 '질투', '불평'을 느끼던 젊었던 내가, 다소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작고 소박한 나에게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노는 장소, 놀이터.
어른들은 서 있거나, 그네를 밀어줄 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고 즐겁게 논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맑은 웃음소리이다.
집에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의 웃음소리하고는 다르다.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 두 아이의 그물 그네를 천천히 밀어준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찾았다.
오랫동안 보기 힘들었던 그 색깔을 나는 드디어 발견했다. 몇 날 며칠 이어지던 흐리고 어두컴컴한 날씨였다. 이 곳의 겨울이면 어김없이 맞이해야 하는 날씨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말간 하늘에서 구름 사이 그 색깔이 보였다. 바로 "파란색"이었다. 아주 조금 이어도, 그래서 더욱 귀하게 여겨져 좋아지는 색깔, 하늘의 색이다.



"파란색" 은 늘 거기에 그대로 항상 있었다.
단지, 그 아래에 하얗고, 회색이고 검은 구름이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항상 나로 그대로 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어떨 땐, 아침에서 저녁으로, 어떨 땐 크리스마스에서 연말로... 그리고 신년의 새해 아침으로 흘러간다.
오직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나는 파란 하늘이다.
내가 "나"인 채로 있으면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