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네임데이 때, 작은 사탕이나 젤리 등을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면 친구들은 한 명씩 나가서 손을 마주 잡고 흔들어대면서 중얼중얼, 한참을 축하의 말들을 건넨다.
많은 기독교 나라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성인(聖人
)들의 이름으로 작명한다. 지금은 네임데이의 의미가 많이 희석된 나라도 있다고 하지만, 슬로바키아는 아직도 생일만큼 중요한 날이다. 달력이나 다이어리에는 날짜와 해당하는 이름들이 함께 적혀 있다. 인기 있는 이름일 경우에는, 그날은 꽃집에서 꽃을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건,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아들반과 딸 반을 모두 합쳐도 같은 성은 두 명밖에 없다. 같은 이름이 많으니,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성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거리에서 어느 한 이름을 크게 불렀다가는, 마주치는 눈빛이 많아어찌할 바를 몰라서,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나의 이름은 우리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나는 자라면서 내 이름이 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건, 딱 한 번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셨다.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성만 다른, 같은 이름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되어있어서 웃겼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나라, 출입국 관리자가 내 이름을 확인하며 "~OK?"하고 물었고, 나는 "OK!"라고 대답했던 기억도 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OK"를 발음하기 힘들어해, 그냥 가운데 이름만 불려도 된다고 해줬다. '옥'이라는 발음은 얼마나 명쾌하고, 딱 부러지는지 지금까지 같은 이름을 한 명밖에 못 만났는데도, 나는 그 '옥'으로 끝나는 많은 이름이 나와 같은 이름인 것처럼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별로 없다. 엄마, 아버지는 그냥 "옥아"라고 부르시고, 떨어져 있는 친구들은 메시지창에 내 이름을 적어준다. 그리고 이곳의 한국 친구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려, 내 이름이 마치 "언니"인 것처럼 부른다.
애들 과외선생님께 아들의 이름은 '바다의 정승'이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더니, 마치 인디언들의 이름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내 이름도 우리 아버지가 탄생의 기쁨으로, 아버지의 철학으로 지어주셨을 거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내 이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 나이가 되니, 이름 또한 나의 눈이나 코, 팔이나 다리처럼 나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이름으로 명명되던 내가 아니라, 내가 이름보다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아무리 훌륭한 성인(聖人)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이름이고 주변에 같은 이름이 흔하다면 싫을 것 같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처럼 일 년 중 어느 맑고 밝은 날을 하루 정해, 내 이름을 축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이름을 오랫동안 불러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