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Anne Jun 20. 2023

나의 나무


공원 바닥에는 간밤에 불어댄 강한 바람으로, 나뭇가지들이 뒹굴고 있었다. 한 나뭇가지를 주워보니, 익숙한 나뭇잎과 처음 보는 꽃이 함께 있다. 많은 유월의 계절을 그 나무 아래로 지나면서도 이 꽃은 처음 본다. 그제야 나무를 올려다보니, 많은 꽃이 피어 있었다.
공원을 걷고 있으면, 여러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는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고, 새로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사람은 아니지만, '백합나무(튤립나무)'를 알게 되어 기쁜 날이다.





내가 공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는 큰 나무이다. 몇 해 전에 그 나무가 좋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개와 산책하던 할머니가 '마로니에 나무'라고 알려 주셨다. 그 후 할머니와의 마주침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나의 나무'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감탄하며 보게 된다. 수관은 하늘을 향해 조화롭게 뻗어있고, 땅으로도 가까이 내려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한 줄기에 여러 개의 넓은 나뭇잎이 펼쳐졌지만 또 모여있는 모습까지, 부드럽고 아늑한 인상을 준다.

오늘은 작은 마로니에 열매들이 잔뜩 뿔난 것처럼 내려앉아있다. 가을이 되면 엄청나게 커져서 반질반질한 열매를 맺을 텐데, 너무 일찍 떨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주변을 한번 살펴고는, '나의 나무'로 다가간다.

아침이 바쁜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한가로워 보일까 봐 혹은 비밀의 문을 열고 가는 것처럼 아무도 몰래 가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발을 뻗쳐 나무 그늘에 숨게 되면, 꼭 깊은 숲에 들어온 것 같다. 새소리가 나뭇잎을 타고 깨끗하게 울려 퍼진다.
1초, 2초, 3초... 눈을 감는다.
닿을 수 없는 나무의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두꺼운 나무껍질을 만져보고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슬쩍 내 사진을 한 장 찍어서는 '나의 숲'을 빠져나온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의자에 앉아서, 좀 전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내 표정에서 나무가 느껴진다. 요즘은 그곳이 어떠했는지는, 내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매일 나무를 보러 가면 나의 시간도, 나무의 시간도 더욱 잘 느껴진다. 그러고선 자연의 시간에 대해서도 조금씩 배워가게 된다.

나의 시간은 꽃처럼 화려하고 예쁜 봄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작게 맺은 열매가 무엇이 될는지는 아직도 모르는 초여름에 머무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무 앞에서 웃고 있는, 지금의 내가  예뻐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시지 구워 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