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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온 Mar 28. 2024

프롤로그

사람들은 누구나 비극을 껴안고 살아간다.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를 정도로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지금 내 앞에는 무릎을 꿇고 우는 한 사람이 있다. 

  처음 보는 표정과 목소리로 떨고 있는 X의 모습을 보자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와서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X는 나의 첫사랑이다. 

  그러나 나의 첫사랑은 나의 바로 앞 차가운 대리석 복도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너와 나의 관계가 이렇게 변한 것일까. 

  그녀를 계속 바라볼 수 없어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통유리창 너머의 연못 속 잉어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고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는 눅눅한 한여름의 공기를 빈틈없이 채우려는지 끊임없이 소리친다. 




  "나는 너한테 뭐였어?"

  "…………………………."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된 후에도 나는 이성적으로 그녀와 대화하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나를 속인 건지, 나에게 보여줬던 말과 행동들은 모두 거짓이었는지. 그렇다면 그게 왜 하필 나였으며 처음 만났던 날 무슨 생각으로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었는지 등등. 

  하지만 그녀가 무릎을 꿇는 순간 내가 준비했던 말과 태도는 녹아 없어져 버렸고, 여백만 남은 머릿속에서 간신히 꺼낸 질문을 던졌지만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무의미한 시간만 흘러갔다. 

  우습게도 난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지금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와 같은 거짓이길 바랐다. 

  간간이 들려오는 수업 중인 교실의 소음, 야외 미술수업으로 한껏 들떠 뛰어다니는 학생들, 기합소리가 들려오는 태권도장, 지나치게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학교.  

  그러나 이렇게나 평범한 일상 속 우리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은 불과 2달 전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보다 조금 더 앞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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