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리뷰
아주 오래전 12월 첫눈이 오던 날,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후광이 비치며, 슬로 모션으로 내 앞으로 걸어오던 사람, ‘아, 영화에서 저런 장면을 연출했던 것은 상상이 아니라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사람.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얻고 싶어서, 어떻게든 말을 한번 걸어 보고 싶어서 낯선 모임, 낯선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요령이 없어 눈에 띄게 호감을 표현하고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와 단둘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바로 ‘로맨틱 홀리데이’다. 둘 다 상영중인 영화는 대부분 관람했던 영화 마니아여서, 함께 볼 영화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마침 그 주에 개봉한 영화가 로맨틱 영화라니. 이건 운명이라며 마음속으로는 우리 둘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100가지 이유 중 하나로 의미 부여를 했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미국에 사는 아만다와 영국에 사는 아이리스가 크리스마스 휴가에 집을 바꿔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L.A에서 잘 나가는 영화예고편 제작회사 사장인 아만다(카메론 디아즈)는 돈도 아름다운 외모에 부유하며, 화려한 인맥을 가진 누가 봐도 성공한 여자지만, 연애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남자친구는 회사의 어린 직원과 바람이 난다.
영국의 예쁜 오두막집에 살면서 인기 웨딩 칼럼을 연재하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녔지만, 그녀가 짝사랑하던 사람은 그녀와 회사 사람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여자와의 약혼을 발표한다.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그녀는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두 여자는 온라인상에서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하고 2주의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기로 계획하고, 각각 L.A와 영국으로 날아간 아만다와 아이리스.
예쁜 오두막집에서 오직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아만다에게 아이리스의 매력적인 오빠 그레엄(주드 로)가 찾아오게 되고,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둘은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시작한다. 한편 L.A로 간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친구이자 영화음악 작곡가인 마일스(잭 블랙)를 만난다. 푸근한 외모와 따뜻한 유머감각을 지닌 섬세한 감수성의 이 남자와 서로의 감성을 조금씩 이해하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영화의 많은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연말분위기가 나는 따듯한 장면들, 그리고 함께 와인을 마시던 장면들이 어렴풋이 아름답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마도 영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아만다와 그레엄의 조금 진한 장면이 나올 때는 얼굴이 달아 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로맨틱 홀리데이>는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영화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나는 처음 본 날 가까워 지는 그런 사랑은 영화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첫눈에 반한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간 나는, 내 옆에서 이영화를 함께 보고 있는 사람과 <로맨틱 홀리데이>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이 되길 기대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며 내가 먼저 말했다.
“우리 술 한잔 하러 갈래요?”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었다. 올해 12월 16일에도 넷플릭스로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았다. 예전엔 미쳐 인지 하지 못했던 장면을 세세히 보면서, 다시 봐도 참 좋네…하고 혼자 감상에 빠져 들었다.
아 참, 이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현남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