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사랑스러운 한 여자아이의 엄마이자, 한남자에게 담뿍 사랑받고싶은 아내이자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는 막내딸이자, 경력단절녀로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다시 사회로 나오게된 간호사이다.
우리엄마는 눈이 퐁퐁 오는 겨울날 나를 낳았다.
눈이오는날 갓난아기를 품에 조심스레안고 집으로돌아오던 그날을 엄마는 잊을수가없다고한다.
나는 나름 유복한 가정환경속에 엄마아빠 그리고 두언니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받으며 자랐다. (결혼후 이 넘치는사랑이 과연 이로운점만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나도 아직 확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학창시절부터 젊은 엄마이자 우리엄마같은 현모양처가 되는것이 꿈이었다. 현실을 알기전까지는 모두 그런 것일까? 내게 제일은 사랑이었고 생각보다 이른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고 아이를 갖게되었다.
하지만 욕심도많고 자아도 강한 나는 아직 준비되지못한 엄마였을까. 희생보다는 이기심이강했던 것일까.
한 아이의 엄마로 오롯이 희생하며 남편을 이해하고 사는것은 내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잠든모습을보며 숱한날을 이불을뒤집어쓰고 울던 몇년 전을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또 내아이가 훗날 내가느끼는, 여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아려온다.
본인 자신보다 언제나 아이가 우선이었던 친정엄마를 보고자라서였을까. 출산과 동시에 나는 대학병원 경력을 잃었고 사직서를 제출하던 그 날을 잊지못하고있다.
대다수의 한국여성들이라면 공감하지않을까.
어찌저찌 독한맘을먹고 직장으로나온 여성들이라 해도 처녀적과는 다른 마음가짐. 엄마라는 이름표는 짐이기도 하지만 나자신이 힘내서 다시일어나야하는 이유일것이다.
나는 나자신의 커리어보다는 아이를 택한 케이스였고 내 선택에 각오는 충분히 되어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부터 남편과 나는 아이를 재우고 수없이 언쟁하기일쑤였고 그때마다 나는 피해의식과 절망에 휩싸였다.
내인생에 가장 꿈꾸고 날개를 달아야할 이십대 후반을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울고웃으며 보냈던 그시간들을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왜 그시간에 행복을 찾지못했을까 생각해본다. 내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자신이 져야할 의무가있으며 내가정을 건강하게 지켜야할 의무또한 내게있다는것을 그 지혜를 그때 깨달았더라면.
지금 내아이는 네돌이지났고 나도 오전만 일하는 파트타임 잡을 얻었다. 3년간 공백을 깨고 동네병원에 취업했다고 했을때 감사했던 그마음을, 그리고 엄마와 나눴던 대화들을 되뇌면서 지금, 당장 이순간이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