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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Aug 14. 2023

[콩트 같은] 필름이 끊기면 안 되는 자리였는데...

넷플릭스에 음주를 권장하는 듯한 영화가 있다.


이로부터 본 글감이 떠올랐다.

이 글은 주량 관리를 못했던 내 흑역사의 일부이지만, 이제는 먼 옛날옛적 얘기이기에 창피함보다는 추억이라는 의미가 더 큰 듯하다.

그렇기에 이렇게 공개적인 글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를 보면 음주가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듯이 묘사되어 있다. 적당한 음주는 자신감을 키워줘 삶이 액티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가설에 근거한 영화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0.05% 정도의 혈중 알콜 농도(와인 한두 잔 정도)는 사람을 매우 창의적이고 진취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 경우를 보면 술을 마시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 자신감이 엉뚱한데 쓰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 주량을 생각하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과음하는 자신감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몹시도 컸다.


술이 약하여 쉽게 필름이 끊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음날 몹시도 찝찝하다는 것을.

밤 사이에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지 몹시도 걱정이 된다.

함께 술을 마셨던 동료들의 눈치를 살살 살펴본다.

하지만 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평소와 다름없다.

아마도 별일은 없었는가 보다.

그래도 계속 찝찝하다.

이제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속 시원하게 알아낼 방법이 없다.

내가 먼저 물어보기는 싫다.

필름이 끊겼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기는 싫기 때문이다.

술이 약하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예전에 자주는 아니지만 부지불식간에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특히 즐거운 술자리에서 그랬다. 방심하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며 잔을 들이키다 보면 어느 순간 다음날이 되어있다.

기억나는 내 마지막 모습은 술잔을 들고 뭔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뿐이다.

이럴 때마다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큰 실수를 저질렀을까 봐.


아래 이야기는 정말로 큰 실수를 할 뻔했던 콩트 같은 사건이다.

필름이 끊기면 안 되는 자리에서 필름이 끊겨버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은 술 자체를 거의 안 마시지만, 난 젊었을 적 한동안은 많이 취하면 주변의 술들을 빠르게 다 마셔버리면서 필름이 끊겨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의 일이다.

신년초에 신년 하례식으로 우리 연구실 동문 전체가 지도 교수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교수님께서는 맛있는 음식들과 양주들을 푸짐하게 내놓으셨다. 정말 많이 내놓으셨었다. 특히 양주를 푸짐하게. 덕분에 우리 동문들은 맛있는 음식과 세상 얘기들을 안주삼아 신나게 먹고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가 잘 아는 주제들이 대화거리로 계속 나왔고, 난 신이 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떠들고 더 먹고 마셔댔다. 그러다가 나의 그 나쁜 버릇이 나와 버렸다. 필름이 끊겨 버린 것이다. 그러면 안 되었는데 말이다. 그 자리에는 교수님, 사모님 그리고 많은 선배님들이 계셨었기에 난 각별히 조심을 했어야 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이것이다.

한참을 마시다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했었다. 그랬기에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해가며 더 이상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발생했다. 이때 우리 동문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서 두 편으로 나뉘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내 의견을 물어왔다. 마침 나도 관심이 많았던 이슈였던지라 할 말이 무척 많았었고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아마도 정신없이 떠들다가 그 잠깐 사이에 방금 전 화장실에서 다짐했던 약속을 까먹은 것이 틀림없다. '그만 마셔야지'라고 했던 약속을.


나중에 선배님께 들은 바로는, 얼마 후 내가 주방 식탁에서 사모님과 약 30분 정도를 따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이다. 동문들은 내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장시간 했는지 몹시 궁금해했다.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 궁금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사모님께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큰 문제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그러던 중, 하루는 교수님 심부름으로 교수님 댁에 책 하나를 가지러 갈 일이 있었다. 대학원생들도 다 갖고 있던 책이라 꼭 교수님 댁의 것을 급하게 가져올 필요까지는 없었던 책이었다. 아무튼 댁에는 사모님이 계실 것이므로 그냥 받아만 오면 된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난 사모님을 봬야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걱정이 되었다. 신년 하례식 때 혹시라도 실수를 했었을까 봐.

그랬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교수님께서 나를 사모님과 독대할 자리를 만들려고 심부름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사모님께서 내게 훈계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아무튼 교수님 댁으로 향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어떻게 변명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술 핑계만을 댈 수는 없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겠지?

   그러면 아마도 사모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거야.'


드디어 사모님을 뵈었다. 난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교수님의 책을 건네받았고,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는 차 한잔 하라는 둥 하시면서, 뭔가 내게 말씀하실 것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아, 뭔가 조심스럽게 훈계를 하시려나 보다. 할 수 없지, 뭐.

    내가 잘못했으니까'

난 또 한 번 사모님과 식탁에 마주 앉게 되었다.

사모님께서는 교수님의 급한 성격 때문에 학생들이 힘들지 않느냐 하시며 가볍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리고,....

사모님께서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하신 말씀은 전혀 뜻밖이었다.


   '홍 군, 선 한번 볼 텐가?'


당시에 사모님은 모대학의 의상학과 교수님이셨고 여제자들이 많았다. 사모님께서는 졸업한 제자들 중 한 명을 내게 소개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주 좋은 제자가 있다고 하시면서.
난 당연히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리면서, 속으로는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만취한 상태에서도 크게 실수하지 않고, 오히려 비교적 좋은 인상을 사모님께 드렸었나 보다.
교수님께서 내게 심부름을 보낸 것도, 사모님이 그 말씀을 하실 기회를 만들려고 그러셨었던 듯하다.
도대체 내가 사모님께 무슨 말씀을 드렸었기에 나를 잘 보신 것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알 방법은 없다.
이제는 두 분 다 고인이 되셨기에 더욱더 알 수가 없다.




이 일 이후로,  어느샌가 절주 다짐을 까먹었다.

심지어는 필름이 끊겼을 경우에도 그에 대한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마, 난 실수하지 않았을 거야.'

라고 하면서. 

하지만 필름 끊김은 그 자체로 싫다. 그 찝찝함이 몹시 싫다. 비록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과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은 마실 일도 거의 없다.


PS:

사모님 제자는 내가 아내와의 만남 이전에 선을 본 37명의 아가씨 리스트에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인연이 될 수 없었다.

이 아가씨의 역할은 나와 아내의 결혼이 필연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었다.


이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예전 글 '수학으로 증명된 아내와 나의 필연'을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끝.


(2023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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