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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Jun 28. 2016

음악으로서의 미술

샤갈 달리 뷔페展 후기


 인간은 저마다 심장에 한 명의 하프 연주자를 품고 있다. 그들은 주인의 마음이 다양한 색깔을 받아들일 때마다 서로 다른 줄을 튕긴다. 그렇게 좋은 그림은 좋은 연주가 된다. 부드러운 화음이든 전율케 하는 불협화음이든, 미술은 내면을 뒤흔드는 퍼포먼스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샤갈 달리 뷔페 展>에서도 경쾌한 샤갈, 통통 튀는 달리, 경건한 뷔페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1. 마음이 따뜻해지는 색채, 샤갈

 나에게 샤갈은 헤르만 헤세 같다. 삶과 사회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전파하기 때문이다. 샤갈의 작품들에는 어떤 긍정적인 세계관이 관통하고 있다. 이 진지한 낙천주의는 서로를 껴안는 신랑과 신부, 순종적인 말, 웃음을 머금은 새의 테마가 반복됨으로써 드러난다.

 샤갈은 무수한 색채를 이용해 이 주제들을 표현한다. 샤갈의 작품 속에서 관람자는 하나의 그림으로부터 모든 색채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체험한다. 빨강과 파랑이 서로 불을 비비고 분홍과 초록이 마주 본다. 그러나 전혀 산만하거나 눈 아프지 않다. 그의 색깔들은 네온사인이 아니라 무지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샤갈의 작품은 유화에마저도 물을 잔뜩 부은 것처럼 종이가 울고 색채로 (문자 그대로) 물들어 있다. 풍부한 음색으로 마음을 희망으로 촉촉이 적시는 예술의 소유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왼)마르크 샤갈, 하늘의 창, 1957. (오)마르크 샤갈, 심랑 신부, 1979.


2. 천재성의 분화구, 달리

 "[달리는] 미치광이인 척하며, 피타고라스적 정확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문장에서, 그리고 전시된 작품들에서 나는 달리의 계획된 방종, 이성적 광기를 보았다. 일상적인 소재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상징화하고 예술적으로 승화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밀한 계산을 통해서 탄생한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나는 달리에 대해 경탄하는 동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너무 재능이 많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천재적일 수 있을까? 나는 종종 조악한 낙서만으로도 뿌듯해하는데 이런 작품을 그리고 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에 비해 나의 보람은 얼마나 작은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if you act the genius, you will be one"이라는 그의 말을 통해 달리 역시 끊임없는 실천과 노력을 통해 일정 경지에 오른 것임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왼)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 피아노, 1984. (오)살바도르 달리, 서랍의 의인화, 1982.


3. 미술이란 종교의 신자, 뷔페

 솔직히 뷔페를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달리의 작품이 끝나는 순간 기대감은 절반 이하로 푹 떨어졌고 '거의 다 봤네'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뷔페는 달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예술가였다. 달리의 작품들이 정신없는 쾌락의 동물원을 이뤘다면 뷔페의 예술은 다소 차분하고 경건한 꽃다발 같았다.

 이 성스러움은 두 가지 요소로부터 나온다. 첫째는 그림의 일관적인 스타일이다. 화가의 눈에 세계는 일반인과 다른 광선을 쏘나 보다. 뷔페에게는 평범한 도시의 광경과 일상이 다르게 현현했다. 그는 이성적이지 않은 슬픈 직선을 그음으로써 구상을 고집하면서도 추상과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요구되는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삐딱한 감성을 유발할 줄 아는 예술가 같았달까. 둘째는 뷔페의 삶 그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경건함이다. 오랜 기간 그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그의 '생활' 자체가 내게 경이롭게 다가왔다.


(왼)베르나르 뷔페, 파란 커피포트가 있는 정물화, 1961. (오)베르나르 뷔페, 서커스, 퍼레이드, 1968.


 신랑의 낭만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했던 사랑의 화가 샤갈, 그의 결혼행진곡. 시대의 지진 달리, 그의 격정 어린 엇박의 왈츠. 서글픈 직선을 그릴 줄 알았던 뷔페, 그의 신성한 소나타. 그들의 미술관에서는 성대한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Cover image: Salvador Dali, Surrealist Piano, 1984. All images copyrighted by the artists, and some images from the official website of the exhibition, as fair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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