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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Jul 14. 2022

A의 시간


  영업부장은 오늘도 A에게 화를 냈다.

  “제발 업무 공유 좀 제대로 하자고,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지 말라고, 내부 품의 좀 제때 올리고, 법인 차량 운행 일지도 제발 밀리지 말고 작성하라고. 도대체 같은 말을 몇 번씩 해야 하는 거냐고!”

  부장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고개를 숙인 채 화를 받아내던 A가 마침내 답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A는 최근 들어 지방 출장을 자주 다녔다. 법인 차량을 운전해 인천과 강원과 부산으로 물품을 납품하고 회사에 돌아와 서류 작업을 처리했다. 어떤 날은 법인 차량을 가지고 퇴근했다가 새벽에 바로 부산으로 출발해 업무를 마치고 오후 늦게 복귀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은 업무를 하느라 제때 퇴근하지 못했다. A는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누가 봐도 시간이 없어 보였다.


  A는 정말 열심히 일한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다녀오는 시간을 제하고는 점심도 거르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업체에서 견적을 의뢰해오면 이탈리아에 있는 협력사에 물품대를 확인해 견적서를 작성한다. 영어로 작성된 서류를 번역하고,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지방에 있는 업체에 방문해 담당자를 만난다. 계약을 성사하고 회사에 돌아와 발주를 넣고 물품이 도착하면 관세사무소와 연락해 물품 수입 통관을 진행한다. 창고에 물품을 정리하고 기일에 맞춰 다시 지방에 있는 업체에 내려가 납품을 끝낸다. 사무실에 돌아와 물품대와 통관 비용을 정산해 청구하고 이탈리아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물품대의 지출 기안을 올린다.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하는 사업을 최소 열 개쯤 동시에 소화한다. 틈틈이 업체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신입직원에게 업무를 가르치고, 내부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간 회의와 월간 보고 등을 한다.


  A는 그사이 해야 할 다른 업무를 자주 놓친다. 견적 품의서를 생략하고 견적서를 내보낸다. 어떤 결재권자도 승인하지 않은 금액으로 물건을 팔겠다고 계약하고 돌아온다. 또는 발주 품의서를 작성하지 않고 발주부터 한다. 다른 직원들이나 부장은 나중에 물품이 통관되거나 한참 뒤 창고에 있는 물품을 보고서야 발주 사실을 안다. 관세사무소에서 통관을 진행하면 그에 따른 비용을 정산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A가 지출 품의서를 올리지 않아 관세사무소는 통관 수수료를 비롯해 대납한 창고료와 운송료를 제때 받지 못한다. 외근이나 출장 시에 사용한 법인카드의 지출 품의서를 올리지 않아 회계부서에서 몇 번이나 요청해야 한다. 사업별로 지정된 관리 코드를 무시하거나 잘못 공유하는 일이 많다. 매출이익이 과대하게 잡히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재무 담당자는 A에게 확인을 요청한다. A의 확인을 받기 위해 다섯 번 이상 같은 메일을 보낸다. 메일을 보내고 사내 메신저에 메시지를 올리고 직접 자리로도 찾아간다. 실적 보고가 늦어지면 재무 이사가 담당자를 찾는다. 담당자는 A에게 확인받지 못한 사항을 정리해 보고한다. 재무 이사가 A를 닦달하면 A는 그제야 확인 요청 메일을 제대로 읽어본다. 그리고는 그 일을 하느라 바빠 다른 업무를 미룬다. A가 확인을 해 주면 재무 담당자는 그 확인이 맞는지를 다시 확인한다. A가 준 서류에는 틀린 숫자가 많다.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한다. A가 확인한 사항에 따라 손익과 재무 상태가 바뀐다. 가끔은 실적 보고서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한다.


  A가 영업부에 입사한 지 삼 년이 지났다. 영업부장은 A에게 여러 번 화를 냈지만, A는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영업부장은 A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A를 내보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 A는 영업부에서 가장 오래 버틴 직원이다. 영업부는 계속해서 인력을 충원하고 있지만 신입직도 경력직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갔다. 올해 새로 들어온 신입직원은 몇 개월째 한가해 보인다. 영업부장은 A에게 신입직원을 가르쳐 일을 넘기라고 하지만, A는 신입직원을 가르칠 시간도 여력도 없다.


  나는 A에게 매번 확인을 간청하는 재무 담당자다. 각종 품의서를 요청하고, 정산이 제대로 됐는지, 사업의 매출이익이 제대로 계산됐는지, 사업 코드는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지긋지긋하게도 매일 A에게 해달라고 할 일이 있다. 사실 내가 A에게 요청하는 모든 일들은 A가 이미 알아서 해야 했던 것들이다. A가 제때 그룹웨어에 파일을 업로드하고 기안을 올리고 메일을 보내면, 그리고 그 내용이 정확하기만 하다면, 나는 A와 말 한마디도 나눌 필요가 없다. 하지만 A는 요청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먼저 주지 않는다. 동료는 내게 어떻게 A에게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A가 싫고, 가끔은 화도 난다. 그런데 화가 날 때마다 내가 화를 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제때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A인지, 너무 많은 일을 한 사람에게 맡겨버린 부장인지, 이 모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조직인지.


  가끔 A를 보고 있으면 저 사람도 그만두고 싶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가엾고 소중한 사람이겠지. 누군가는 A가 행복하기를 바라겠지. 저 사람은 언제 행복감을 느낄까. 얼핏 듣기로는 가족 중 한 명이 많이 아프다고 하던데, 점심 식사를 거르는 이유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매일같이 야근하고 집에 가면 어떤 행복을 느낄 시간이 남아있기는 할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은 있을까.


  A는 나와 같은 82년생이다. 사십대 초반에 사천만 원 초반대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 이미 무언가 이뤘어야만 할 것 같은 나이지만 실상은 손에 쥔 것도, 가진 선택지도 많지 않은 근로소득자. A나 나나 회사에서의 정체성은 숙련된 일꾼이다. 엇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고만고만한 일을 하며 쌓아온 경력을 인정받아 회사에 채용되었다. 회사가 우리를 다루는 방식은 사람보다는 기계에 가깝다고 느낀다. 회사는 비용을 들인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우리를 한껏 활용한다. 근로기준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근로 환경을 제공하면서 한 명의 직원에게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노동력을 취한다. A는 분명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직원은 아니지만, 그에게 다른 종류의 일을 잘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르고, 어쩌면 A도 평생 알지 못하게 될 어떤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

  A에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일을 미루거나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A에게 온전히 자기에게만 쓸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나는 A가 싫지만, 그의 사연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고 싶다. 어차피 내가 A에게 화를 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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