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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Dec 12. 2023

내가 내준 숙제


  남편의 어릴 적 일화 중에 내가 유독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누운 꼬마는 문득 내일까지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꼬마는 깜짝 놀랐지만 여전히 누운 채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숙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싶지 않다. 다시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모른 척하고 이대로 자고만 싶다. 그런데 모른 척이 잘 안돼서 잠이 오질 않는다. 숙제를 안 하면 내일 학교에 가서 혼이 날 것 같은데. 혼나는 건 정말 싫은데 그보다 숙제를 하는 게 더 싫은 것 같다. 너무 싫어서 몸이 일으켜지지를 않는다. 이불 속은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하다. 정말이지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꼬마는 누운 채로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다가 결국 숙제도 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았다는 이야기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지금의 남편을 보면 밤새 이불 속에서 뒤척였을 꼬마의 표정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숙제를 할지 말지 고민만 하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아침을 맞았다니.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그토록 하기가 싫어서 결국은 하지 않았다니. 그 대책 없고 천진했던 꼬마가 이렇게 자라 어른이 되었다는 게 기특하고도 애잔해서 남편을 안아주고 싶어진다. 이제 꼬마는 대책 없이는 귀여울 수가 없고, 웬만해서는 해야 할 일을 제때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일들은 정말이지 하기가 싫고 그래도 해야만 해서 남편은 시시로 괴롭다.


  반면 내 경우에는 애초에 숙제를 잊은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부터가 있을 수 없는 전개이다. 나였다면 아마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부터 끝냈을 테니까. 기억 속의 나는 여간해서는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 아이였다. 미루기는커녕 되도록 빨리 일을 해치우고 싶어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끌어안은 채로 하루를 보내야 할 테고 나는 그런 어정쩡하고 꺼림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무래도 선생님에게 혼나는 일을 숙제보다 더 싫어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리 엄한 부모 아래 큰 것도 아닌데 자라는 내내 어른을 지나치게 무서워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고 뭐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려고 애쓰는 아이였으므로 그들의 말을 어길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부모나 선생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혼나는 게 두려워서 하릴없이 착한 아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대로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쩐 일인지 착한 어른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바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되었으므로 어른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내게 하는 말을 잘 듣자고 다짐한다.

  나는 내게 수많은 일을 시키고 덕분에 일상은 질서 있고 순조롭게 흘러간다. 직장에 다닐 때나 지금처럼 일을 쉴 때나 늘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고 침대를 정돈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주방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집안을 치우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산책을 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보고 싶은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가고 영어를 공부하고 훌라를 추고 아령 운동과 하체운동을 한다. 대부분 매일 하는 일들이고 며칠에 한 번, 달에 한 번 하는 일도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일기 쓰기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지 오늘로 731일째가 되었다. 일이 너무 많아 야근을 한 날에도, 술에 취해 뭐라고 쓰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날에도, 집을 떠나 여행하던 중에도, 급성 간염으로 세상이 노랗게 보였을 때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던 날에도 병실에 누워 일기를 썼다. 쓰면 쓸수록 그 일이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늘 무언가 쓰고 싶은 상태였지만 대체로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지냈다. 쓰지 않았지만 쓰고 싶었고, 쓰고 싶었지만 쓰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글쓰기는 그렇게 무한히 미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다만 몇 문장이라도 써보자 싶었다. 백 일 동안 일기를 써보자는 계획이 일 년으로 늘어났고 그 다짐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꼬박 이 년이 되었다. 나의 성실함과 꾸준함에 기댄 결과였다.


  몇 년, 몇 월, 며칠. 날짜를 쓸 때마다 나는 어쩐지 조금은 경건해져서 새 마음으로 하루를 잘살아 보고 싶어진다. 메모장의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있으면 나의 맨얼굴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새 하루를 앞에 두고 어제나 그제 혹은 더 먼 언젠가의 날들을 되짚어 본다. 보았지만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 들었지만 잊힌 말들, 가까웠지만 이제는 희미해진 어떤 사람과 사물과 장소와 계절을 들여다본다. 그 틈새에 끼워진 나의 감정과 감각을 꺼내어 살핀다. 무수한 시간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나는 가만히 앉은 채로도 그 모든 시간에 가 닿을 수 있다. 앞으로 가도 과거에 닿을 수 있고 뒤로 걸어도 미래에 갈 수 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그 한계를 내가 어떻게 넘어서고 바꿀 수 있는지 나는 일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점점 더 많이 쓰고 싶어졌다. 무언가를 쓰면 쓸수록 나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어서. 나를 더 잘 알 것만 같아서. 이제야 비로소 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나는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런 나조차 실컷 미워하고 욕하고 혼내고 나면 안아줄 마음이 들었다. 어린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그때의 내가 왜 그것들을 두려워했는지, 어째서 그토록 못나고 못되게 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하루는 내가 내준 숙제들로 가득하다. 암 진단을 받고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나는 종일 침대에 누운 채로 빈둥거릴 수도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로 며칠을 보낼 수도 있다. 치료와 회복만이 지금의 내게 표면적으로 주어진 임무이다.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나는 전보다 바지런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날마다 내가 내주는 숙제를 빠짐없이 해치우면서.

  하루하루는 비슷비슷하지만 시간은 선명하게 흐르고 있다. 지나온 나와 먼 훗날의 나를 넘나들면서 나의 표정과 목소리와 언어와 의견이 변했다는 것을, 하루하루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의 습관과 양식이 하루하루 나를 더 튼튼하게 하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내가 서로를 이끌고 격려하고 밀어줄 거라는 걸 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더 믿을 수 있다.




※ 이 글은 2W 매거진 41호 <마감이 있는 삶>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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