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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Nov 21. 2023

쓰는 사람


  스물두 살 때였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들고 있던 신문에 주황빛으로 크게 인쇄된 광고를 보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이란 소설이었다. 그 광고의 어떤 문구에 마음이 끌렸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퇴근길에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샀다. 그전까지는 일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는 간결하고 청아하면서 묘하게 차가웠다. 아주 냉정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있었다. 그녀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애정을 주면서도 어떤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 거리감에 반했던 것 같다. 그 분위기와 태도를 닮고 싶었다. 삶을 소설이라 여기면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겪은 일들을 어떤 서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사는 게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그때 처음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당시에는 글을 쓰려면 어디 골방에 들어가 온종일 글만 써야 하는 줄 알았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혜화동에 있는 ‘한국시문화회관’이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글을 합평하는 곳이었다. 교수님이 주신 글감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가는 게 과제였다.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형식은 자유였다. 나는 소설이 쓰고 싶어서 그곳을 찾아갔지만, 그곳이 ‘시’ 문화 회관이었기 때문인지 줄곧 시를 썼다. 사실을 말하자면 시가 비교적 짧으니까, 과제를 금방 끝낼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늘 시를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한 자리에 모여 누군가의 글을 함께 읽는 경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과제로 써간 시들로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백일장에 나갔다가 덜컥 대상을 받고는 놀라기도 했었다.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올라 내가 쓴 시를 읽어야 했을 때는 너무 떨려서 혼절할 것만 같았다. 덜덜 떠느라 시를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채 내려오면서 너무 잘 쓰지는 말아야겠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참 열심히, 성실히 썼던 시절이었다. 한 주간 고민해 써간 글이 좋은 평을 받을 때면 나라는 사람이 꽤 괜찮게 느껴지곤 했다. 좋은 말을 자꾸만 듣고 싶어서 매주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골몰했다. 그 시절에 들었던 공감과 인정의 말들은 힘이 셌다. 그 감격은 글을 쓰지 않았던 이후 십여 년의 시간 동안에도 계속해서 나를 글에 묶어 두었다. 더는 글 쓰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을 때 제일 먼저 ‘글쓰기 모임’을 찾았다. 요즘은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얻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크고 작은 서점들과 문화센터 등의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새로운 강연이나 모임이 있는지 살핀다.

  프로젝트 임시의 ‘Raw data of me’가 그 시작이었다. 노션 페이지에 이십여 일간 매일 글을 쓰는 프로젝트였는데, 참여 인원도 적고 피드백도 그리 활발하지 않아서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다만 의무적으로 매일 무언가 쓰다 보니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망원동 책방 이후북스에서 진행하는 ‘매일 열 문장 쓰기’에도 참여했다. 김이슬 작가가 정해준 글감으로 매일 열 문장을 써서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올리고, 주말에는 다른 이들의 글에 피드백을 달았다. 누군가의 글에 의견을 내는 일이 오랜만이어서 글쓰기보다 더 많은 공을 들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어떤 의견을 남겨야 할까 생각하며 글을 읽었는데, 읽다 보니 글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마음이 점점 묵직해졌다. 당신도 거기에서 그렇게 애쓰고 있구나 싶어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글쓰기로 삶을 정돈하고 자기를 돌아보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도 꼭 같이 느끼고 있어서, 우리가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서사, 당신의 서재에서는 유진목 시인이 진행하는 ‘안녕, 나의 다른 사람’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삼 주 동안 몇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에세이를 한 편씩 썼다. 마지막 날에는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글을 읽는 건 정말이지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내가 나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감흥을 잊을 수 없어서 이후로도 가끔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뭔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에세이 쓰기’ 수업을 들었다. 스무 명이 좀 안 되는 학인들이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해 토요일 오전에 만났다. 직장을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건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고된 일이었다. 퇴근 후나 주말마다 카페에 가서 글을 붙들고 오래 앉아있었다. 체력적으로 한계를 자주 느꼈지만 쓰면 쓸수록 무언가 더 쓰고 싶어졌다. 마지막 수업을 끝낸 날에는 교수님을 모시고 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짜장면과 볶음밥을 기다리는 동안 돌아가면서 짧게 자기를 소개했다. 수업 시간에는 종일 앞을 향해 앉아있느라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매주 자신의 글을 낭독했기에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가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들이 오간 적 없어도 서로의 마음속 깊은 사연들을 공유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글쓰기 모임에 찾아온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를 너무 알 것 같아서 나는 그 안에서 더없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들이 내 글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던 봄이었다.


  이후로 이 년 동안 여러 글방에 다녔다. 자꾸만 글 쓰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이여도 글쓰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 틈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곤 했다. 한 공간에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각자의 사연을 나누고 그 이야기에 담긴 감정을 공유하고 나면 친한 사이를 건너뛴 어떤 친밀함이 생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서로의 글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눈 후에는 더 이상 서로를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다. 저마다가 쓴 글 안에는 뼈와 살이 붙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글쓴이 자신이기도 했고, 우리 모두이기도 했다.


  처음 글을 쓰고 싶었을 때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삶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나의 서사를 쿨하게 보내지 못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장소, 만나온 사람들, 그사이의 수많은 감정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일은 때로 슬프고 두렵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으로부터 나를 해방한다. 나는 날마다 더 내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는 취미로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다. 지나간 날들의 나를 돌아보고 헤집어 문장으로 다듬는 일은 깊이깊이 숨겨두었던 상처와 아쉬움과 반성과 고통을 꺼내 잘 보이게 널어두는 일이다. 글을 내놓는 일은 나를 공개하는 일과 다름없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내가 느낀 감정과 의견을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검열과 복제와 박제를 반복하며, 때로는 내가 쓴 문장이 나와 동일하지 않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어쩌면 제가 쓴 문장으로 제 발목을 잡는 일이기도 할 테다. 그럼에도 쓰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바로 보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고 믿는다. 나와 남이 나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삶을 정성껏 정돈하여 전달하는 일은 그만큼 삶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일이 나를 피로하게 하고 쉬이 잠들지 못하게 하는 날이 있더라도, 나는 쓰는 사람들 곁에서 오래오래 함께 쓰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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