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각 모음
너와 나의 관계에서 가끔씩 찾아오는 진실된 순간들
이유 없이 상대를 향해 내뱉는 미안하다는 말들
치부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해야 하는 행동들
과정도 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감정들
같은 곳을 향하는 얼굴들 우릴 바라보며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가 떠나는 곳을 향해 가는 길
막막한 모든 공기.
더 이상 길게 머무르지 않는 시선.
적막.
모반, 이라고 했다. 정현의 불쑥 튀어나온 눈썹 뼈에 걸쳐져 있던 그 반점.
그래서인지 그 애의 머리는 항상 길었다. 하지만 정현은 한 번도 그 반점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한 적이 없었다. 도리어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올리는 모습이 정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상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그 긴 머리를 점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정현을 생각하면 가장 크게 떠오르는 매력으로 여겼다. 친구들은 정현을 그릴 때마다 길고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빼놓지 않고 그렸으니까, 그 머리는 정현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다.
2년 전, 처음으로 정현이 머리를 쓸어 올렸을 때 수아는 그것을 멍 자국이라고 오해했다.
2년 후, 수아는 그 반점을 사랑했다.
수아는 그 점을 볼 때마다 정현의 작은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을 보아야만 그 반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수아는 그 점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도 있었고, 정현이 화가 나거나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반점이 미세하게 붉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건 정현도 모르는, 수아만이 아는 작은 비밀이었다.
수아가 정현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건네던 날, 수아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붉어지지 않는 정현의 반점을 보며 다시 한번 정말로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