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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자 Nov 12. 2022

2.

글 조각 모음

 너무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괴로울까.


 매일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반대로 달린 도어락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어. 밖에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도어락.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지만,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것.

 문을 따고 들어가면 거실에는 잔뜩 화가 난 우리 엄마가 있었고, 독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  

 나쁜 년. 왜 이제야 와? 나를 버리려고 했지?

 이런 말을 하고 나를 마구잡이로 때리면서. 그럼 나는 아니라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서둘러 집에 왔다는 말을 덧붙였고, 그럼 좀 잠잠해지곤 했어.


 이게 언니가 없었던 나와 엄마의 삶이야. 예전엔 언니가 이런걸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궁금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니, 그때의 나는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치매에 걸린 노인을 보살피는 요양사의 역할같은 것 말이야. 그리고 엄마가 이 역할놀이를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엄마가 치매환자면, 나는 요양사가 될 수 있으니까. 더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러니까,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


 10년 전이었지. 4층 복도 끝에 있는, 언니와 내가 살던 집에 엄마가 불쑥 찾아왔던 날. 그래. 엄만 늘 그런 식이었어.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엄마가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무작정 짐을 쌌을 때, 그래서 복도의 반대쪽으로 걸어갔을 때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 안에 앉아 있었어. 언니가 복도에 늘어서 있는 다른 집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부를 때에야 나는 겨우 방문 앞에까지 갈 수 있었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난 고작 스무살이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를 버리려고 했지? 나쁜 년."

 이런 말을 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났어. 나는 왜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을까. 언니처럼 소리라도 지르지 않았을까.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홀로 집에 있고, 내일이면 이 집을 떠나. 이 집은 몇 달 뒤쯤 젊은 사람들이 찾을 하얗고 예쁜 카페가 될 거래. 부동산 한켠에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듣고 엉엉 울었어. 병원 면회실에서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보다 더. 눈을 감고, 죽은 사람처럼 누워서 내 손을 꼭 잡던 마지막 엄마의 모습을 보았을 때보다 더 많이. 그 때 나는 문득, 내가 엄마를 너무 사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가 영원히 치매에 걸린 노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엄마가 영원히 죽지 않고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언니가 우리를 버리듯 두고 도망쳤을 때, 엄마가 나한테 액자를 집어 던졌을 때, 부동산에서 아줌마에게 카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돌아와 신발장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을 때. 이런 순간들마다 나는 나의 삶이 좋아지는 척 하면서도 사실은 나쁜 쪽으로만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그리고 지금, 죽어버려서 되돌릴 수 없을 때에야 당신을 사랑했던 것 같다고 깨닫는 이 순간에도.


 나는 언니도 사랑하지 않았어. 도망친 언니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서 왜 대체 우리를 버렸냐고 소리치고 싶었고, 마구잡이로 언니를 때리고 싶었어.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 마음을 적고 있는 건, 내가 엄마를 사랑했던 것 같다고 늦게서야 깨달아버린 순간처럼, 언니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야. 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괴로운 마음 뿐이지만,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서 용기를 내.


 너무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괴로울까.

 나는 엄마를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

 언니를, 우리를 버리고 간 언니를 이제는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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